[남장현 기자의 여기는 브라질] ‘조커’ 이근호의 통쾌한 반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6월 19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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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만 그리던 월드컵 출전에 골까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근호(상주)가 18일(한국시간)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벌어진 러시아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후반 23분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두 팔을 벌리며 환호하고 있다. 교체 투입된 이근호의 골로 한국은 러시아와 1-1로 비겨 승점 1점을 챙겼다. 쿠이아바(브라질)|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yohan@donga.com
꿈에만 그리던 월드컵 출전에 골까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근호(상주)가 18일(한국시간)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벌어진 러시아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후반 23분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두 팔을 벌리며 환호하고 있다. 교체 투입된 이근호의 골로 한국은 러시아와 1-1로 비겨 승점 1점을 챙겼다. 쿠이아바(브라질)|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yohan@donga.com
온갖 시련 이기고 러시아전 천금 골…홍명보호 원정 8강 희망을 쏘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 직전 엔트리 탈락 눈물
그를 괴롭혀온 월드컵 예선용·국내용 꼬리표
3월 그리스 평가전 부상 딛고 꿈의 태극마크
월드컵 첫 경기 교체출장 기적의 반전드라마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을 노리는 한국축구의 믿을 구석은 ‘육군 병장’ 이근호(29·상주 상무)였다.

이근호는 18일(한국시간)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펼쳐진 러시아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후반 23분 과감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터트리며 ‘홍명보호’의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근호의 값진 골로 승점 1점을 챙긴 대한민국은 23일 오전 4시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알제리와 2차전을 치른다. 알제리는 러시아-한국전보다 6시간 앞서 열린 벨기에전에서 1-2로 역전패했지만, 탄탄한 수비조직력으로 만만찮은 상대임을 과시했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얻은 값진 결실이었다. 이근호는 4년 전 남아공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대표팀 최종엔트리에서 낙마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날의 한방으로 그간의 모든 설움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월드컵 예선용’, ‘국내용’ 등 숱한 부정적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29세의 베테랑은 이제 ‘월드스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했다.

● 제대로 통한 승부수!

0-0으로 팽팽했다. 태극전사들이 공격 본능을 발휘하기 위해 전진할 때면 벤치의 홍명보 감독은 두 손을 아래로 내리며 ‘침착하라’고 주문했다. 후반 초반 한바탕 위기가 지나가자, 드디어 터치라인 밖에서 몸을 풀던 교체 멤버에게 호출 신호가 떨어졌다. 이근호가 코칭스태프에게 달려왔다. 홍 감독은 귀엣말로 몇 마디를 건넸다. “어느 순간 러시아의 중앙 수비진이 체력저하를 보일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마라. 속도도 확연히 떨어질 것이다. 미리 준비하라. 적극적으로 찬스를 노리자.”

이근호의 쇼타임이 시작됐다. 후반 11분, 이근호는 친구 박주영(왓포드)을 대신해 그토록 고대하던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그는 페이스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러시아 진영을 휘저었다. 12분이 흘렀다. 중원에서의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역습 상황에서 동료에게 패스할 듯하다가 직접 돌파를 택한 그는 러시아 수비수 1명을 바라보며 통렬한 중거리 슛을 날렸다. 그의 발끝을 떠난 볼은 러시아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프(CSKA모스크바)의 손을 맞고 골라인을 통과했다. 6분 뒤 오프사이드 논란을 낳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제니트)에게 아쉽게 동점골을 내주긴 했지만, 이근호의 골로 홍명보호는 부담스러운 첫 경기를 무승부로 마감할 수 있었다.

● 설움 떨친 반전 드라마!

이근호는 대표팀에서 주전이 아니다. 교체가 익숙한 조커다. 나름 ‘잘 나가던’ 때를 생각하면 섭섭할 수도 있다. 남아공월드컵을 책임진 ‘허정무호’에선 그가 ‘황태자’였다. 그러나 과거는 모두 잊었다. 실망하지도 않았다. 월드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이근호는 올해 초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 한 골이면 드라마를 완성시킨다”며 브라질행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위기도 있었다. 3월 그리스 원정 평가전에서 무릎을 다쳤다. 그러자 소속팀의 스승이 나섰다. 상주 박항서 감독은 치열한 순위싸움의 와중에도 출전시간을 배려해주는 등 제자의 월드컵 출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렇게 꿈은 현실이 됐다.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부터 묵묵히 몸을 만들며 ‘때’를 기다려온 이근호는 자신의 65번째 A매치에서 19호골을 터뜨리며 모두의 기대에 부응했다. 경기 후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평생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운이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골을 도왔다”고 밝혔다. 스스로 도왔던 이근호를 쿠이아바의 하늘이 도왔다.


쿠이아바(브라질)|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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