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인면수심의 이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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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된 ‘들개들’은 ‘도가니’처럼 충격적 실화를 다룬 영화다. 2012년 전북 무주군의 시골에서 실제로 일어난 지적장애 아동의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했다. 50대부터 70대까지 주민 다섯 명이 열세 살짜리 초등학생을 4년이나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장애인 돌보미의 신고로 사건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꼬마 적부터 잘 아는 이웃들이 가해자였고, 소녀의 친구 할아버지가 저지른 짓을 알게 된 다른 주민들은 신고는커녕 범행에 가세했다.

▷구들장 같은 온기와 인정이 넘치는 시골 마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 사건이 또 벌어졌다.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강원도의 한 마을에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27세, 24세 자매를 상습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킨 이웃 주민 2명이 최근 구속됐다. 아버지는 2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 세 딸까지 모두 지적장애인인 탓에 자매는 범죄에 무방비 상태였다. 게다가 큰아버지 부자(父子)가 아버지의 재산까지 빼돌려 네 모녀는 끼니를 걱정할 만큼 궁핍하게 지냈다. 이웃도, 가까운 친척도 사람 노릇을 포기한 인면수심(人面獸心).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지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다. 성에 대한 인식이나 사후 대처 능력 등이 부족한 점을 가해자들이 악용해서다. 외지인에게 폐쇄적인 작은 공동체에선 서로 이웃해 살아가는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 예방과 인권 보호를 위한 정기적 모니터링, 피해자들이 상처를 씻고 다시 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장애 여성이라고 예외가 돼선 안 될 일이다.

▷네 모녀의 가정을 방문했던 한 목사가 셋째 딸의 임신을 알아채고 신고하지 않았다면 자매의 고통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됐을지 알 수 없다. 2년 동안 고립무원 상태의 가족을 도와줄 손길이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회적 약자들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 참 멀기만 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들개들#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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