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문창극 장로와 문창극 총리후보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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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강연의 전체 기조는 애국애족과 자유민주주의
6·25와 일제강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낡은 인식
과거와 현재, 말과 글, 교회 안과 밖이 혼란스럽게 뒤엉킨 검증대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3년 전 그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서 한 강연의 전체 기조는 애국애족(愛國愛族), 자유민주주의, 근로정신이다. 그는 이것을 보수적인 기독교 어법(語法)으로 이야기했다.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70분짜리 동영상을 보고 나서 ‘문 후보자에게 소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쪽으로 돌아섰지만 지금은 청와대와 당의 기류가 다시 바뀌는 것 같다.

외국 선교사들이 도래한 조선 후기에 왕실은 무능하고, 관리들의 수탈이 극심하고, 국가의 인프라는 열악하고, 백성은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그는 이 같은 선교사들의 관찰을 토대로 일제 식민화는 조선 500년 내려온 못된 관습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고난과 시련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구약성서 같은 역사 해석이다.

문 장로가 인용한 클로드샤를 달레의 ‘조선교회사’에 나오는 대로 한국의 지방 병기고에는 고철 나부랭이만 굴러다녔다. 이런 나라가 서구 문명을 일찍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길에 나선 일본의 야욕(野慾) 앞에 제물이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 든 강도 앞에서 무장해제를 하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패망과 식민화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해버리면 식민주의 옹호 논리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특히 “6·25는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말은 보통의 기독교인 관점에서도 너무 나갔다. ‘분단이 되고 전쟁이 터졌으나 미국이 와서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고 한미동맹으로 굳건한 안보의 기틀을 다졌으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고 말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다. 말이란 퇴고가 불가능해서 글로 옮겨 놓으면 트집 잡을 데가 많다.

일제 강점 35년과 남북 분단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예정(豫定) 속에서 모든 일이 이뤄진다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역사인식에 근거한다. 한국에는 중국 일본과 달리 미국 남부의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 많이 왔다. 아직도 한국 기독교에는 그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평안도는 한국에서 기독교가 가장 일찍 들어온 지역이다. 문 후보자는 평북 삭주에 살던 고조부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5대(代)째 신도라고 한다.

이 강연이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이뤄진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그의 기독교적 신념이 총리직 수행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돼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신문 칼럼에서는 교회 강연과 같은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장로로서의 생각과 총리 직무 수행의 판단 기준은 다를 수도 있다.

나는 문 장로의 하나님관(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신학은 하나님이 역사나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면서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초월적이고 간섭주의적인 신(interventionist God)을 버린 지 오래다. 많은 유대인은 나치의 학살을 지켜보면서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님’이라는 신관(神觀)을 수정했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초월적이고 간섭주의적인 신을 상정한다면 인간사에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너무 많다. 마치 뉴턴의 역학을 갖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둘러싼 논란은 종교 갈등으로까지 점화했다. 기독교는 대체로 진보와 보수로 갈리는 듯하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이 허송세월”이라는 내용에는 성균관 유림이 반발했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중앙종회는 “2000만 불자와 5000만 국민의 뜻을 헤아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한 장로가 3년 전에 같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교회 밖으로 뛰쳐나오면서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위안부 관련 발언도 그의 해명처럼 위안부가 반(反)인륜 범죄임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하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움직임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한 장로의 사견(私見)이 현직 총리의 발언 이상으로 민감성이 높아졌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교회 안과 밖, 말과 글이 복잡하게 뒤얽혀 문 후보자는 역대 총리 후보자들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뜨거운 검증대에 올라 서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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