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영원한 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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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차장
김영식 국제부 차장
세계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된 곳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유역이다. 터키에서 시작되는 유프라테스 강은 시리아를 거쳐 바그다드 서쪽을 지나 페르시아 만으로 흐른다. 티그리스 강은 이라크 제2도시 모술과 바그다드를 거친 뒤 유프라테스 강과 만난다. 두 강 유역의 충적토 지대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다.

시리아 내전에 참여해 민간인까지 무차별로 학살하며 악명을 떨친 이라크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지난주 파죽지세로 이 지역을 접수했다. 그런 ISIL이 그동안 점령지에서 체포한 시아파 포로 1700여 명을 처형했다고 주장해 종파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테러단체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알카에다마저 ‘지나치게 잔혹하다’고 관계를 끊은 ISIL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황량한 살육의 지대’로 바뀌고 있다.

ISIL이 작전 구역을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확장한다고 밝힌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라는 단체명에 ‘대(大)시리아’라는 뜻의 ‘레반트(Levant)’를 포함해 ISIL로 바꾸면서 수니파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 의지를 내비쳤다.

기존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국경을 해체하려는 이런 움직임에 한 세기 동안 유지되던 중동의 지도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지도는 1916년 5월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장관이던 마크 사이크스와 조르주 피코가 체결한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획정된 자의적인 국경선에 따른 것이다.

강제로 눌러 놓으면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일까.

당시에 뿌려진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분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수니-시아파 간 종교적 분쟁이나 종족 갈등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국경선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 갈등의 배경이었다.

수니파의 형님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니파라는 이유로 민간의 ISIL 지원을 묵인하고, 같은 시아파라는 이유로 이란이 이라크 정권을 돕기 위해 ISIL에 대항할 혁명수비대를 파견하는 게 중동의 현재 모습이다. ISIL의 급격한 성장은 한편으론 수니파와 시아파가 화해할 수 없는 ‘영원한 원수’라는 사실만을 거듭 증명하는 듯하다.

한반도 주변에서도 잘못된 역사의 파장은 이어지고 있다.

새로 내놓는 정책마다 군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자아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극우적 행보가 바로 그것이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평화헌법 9조 해석 변경 방침을 발표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고노 담화의 핵심 표현이 한국과의 정치적 협상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외교협의 내용마저 공개하겠다는 파행적인 태도마저 내비치고 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힘이 빠진 미국을 대신해 안보에 기여하게 된 상황을 악용하는 일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일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웃나라 국민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면서까지 과거를 부정하는 태도를 버리라는 것이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토대 위에서 50년간 발전해온 한일 관계는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할 때 그 기초를 잃는다. 일본의 파행적 행보가 지속된다면 한일 관계가 ‘영원한 원수’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杞憂)로만 그칠까.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
#시리아 내전#이라크#시리아#I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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