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칼럼니스트 문창극의 자기 부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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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논평에서 출발했다. 최초의 신문은 일종의 정치적 팸플릿이었다. 그 신문을 읽고 커피하우스(영국) 살롱(프랑스) 만찬회(독일)에서 갑론을박한 것이 여론의 시작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고, 또 신문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사실 보도의 기능이 커지긴 했지만 논평은 여전히 신문의 본질로 남아 있다. TV와 달리 신문에서 논평이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그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중앙일보 재직 시절 쓴 칼럼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언론인 스스로 논평의 자유를 제한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관련 칼럼에서 “공인으로서의 행동이 적절치 못했다”고 쓴 데 대해 “유족들과 국민께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해드렸다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해 “비자금 조성과 해외 재산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쓴 데 대해선 “가족과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서운한 감정을 갖게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사실 논란과 관련 없는 순전한 논평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논평은 비판이다. 비판받는 쪽은 서운하기 마련이다. 어느 사회도 자살에 호의적이지 않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주의 논평일뿐더러 지극히 정상적인 논평이다. 그런데도 주필까지 지낸 사람이 ‘표현의 미숙함’ 운운하며 논지를 흐리는 것은 직필(直筆)을 곡필(曲筆)로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 후보자가 유독 노·김 전 대통령 관련 칼럼에 대해서만 사과한 것은 친노계와 DJ계를 달래려는 제스처로 보인다. 그러나 칼럼니스트가 칼럼을 갖고 사과하면 칼럼도 사과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문 후보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삶도 부정한다”는 트윗을 날렸다. 분명한 의견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던 칼럼니스트가 다양한 견해를 조율하는 총리가 되는 길이 순탄치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창극#국무총리 후보자#칼럼#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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