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반군 “정부군 1700명 처형”… 종파간 ‘피의 복수’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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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민병대 결집 반격 개시… 시리아와 공조, 접경 반군기지 공습
오바마 “先 종파간 분쟁해소” 요구… 이란은 ‘수니파와 연정’에 시큰둥

이라크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 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정부군 소속 시아파 병사 1700명을 집단 처형했다고 주장하며 사진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BBC는 15일 ISIL이 주장한 집단 처형은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로 반군 1400명을 살해한 것을 뛰어넘는 최악의 학살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분노한 시아파 무장세력이 수니파 주민을 상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에 나선다면 중동이 ‘민간인 살육장’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집단 처형 사진에 지구촌 경악

ISIL은 이날 자체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배교자들은 지옥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시아파 이라크 군경들을 집단 처형하는 사진을 올렸다.

한 사진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남자들이 20∼60명씩 허리를 90도로 구부린 채 땅을 보며 처형장소로 끌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다른 사진에는 손이 뒤로 묶인 수십 명이 땅에 엎드린 채 피를 흘리고 있다.

사진이 촬영된 날짜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티크리트 등 반군이 장악한 지역 5곳 이상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라크군 대변인인 카심 알무사비 중장은 “이 사진은 진짜”라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도 ISIL의 처형 주장에 대해 “ISIL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라크에서는 수만 명의 시아파 민병대가 정부군에 합류해 ISIL에 반격을 개시했다. 파죽지세로 진군하던 ISIL은 이 저항에 부딪혀 현재 바그다드 북쪽 100km 지역에서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이라크군은 15일 시리아와 공조해 이라크 국경 인근 시리아 북부 라카 주와 북동부 하사케 등의 ISIL 기지에 공습을 가해 반군 무장세력 297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 인력 일부를 이동시키고 보안 강화를 위해 해병대와 육군 50∼100명을 현지에 급파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 미국과 이란의 동상이몽

미국은 ISIL의 바그다드 점령을 막기 위해 항공모함 조지 H W 부시를 비롯한 항모 전단을 걸프 만으로 보낸 데 이어 무인기를 투입해 ISIL을 타격할 군사목표물 정보수집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 착수한 미국과 혁명수비대 2000명을 파병한 이란의 계산이 다르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군사개입 전제조건으로 이라크 정부에 종파 분쟁 해소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NYT가 15일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시아파 출신인 말리키 총리에게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 등 3대 종파가 적절하게 대표되는 연정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종파 분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언제든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법치연합은 4월 30일 실시된 총선에서 최다 의석(92석)을 차지했지만 과반 의석(165석)에 미치지 못해 연정 구성이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아파인 이란은 수니파와의 연정에 관심이 없다. NYT는 “시아파의 맹주국인 이란은 (이라크에) 시아파 주도 정부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란은 미국의 군사개입에도 반대하고 있다. 마르지에 아프감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이라크는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맞서 싸울 능력과 필요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과 이란은 겉으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 한국 근로자 1300여 명 체류… 외교부, 비상탈출 계획 준비

한국 외교부는 이라크에 체류하는 교민 안전을 매일 점검하면서 비상시 탈출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80개 한국 기업에 소속된 한국 근로자 13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이미 위험지역에 있던 4개 기업 한국 근로자 24명은 정부 권유에 따라 안전지역으로 대피했거나 귀국했다.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남부지역에 머물고 있다. 주이라크 대사관과 아르빌 사무소 소속 외교관은 20명에 이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6일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와 이라크 정부군의 대치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상황이 불안정해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유사시 근로자 1300명을 인접국으로 옮길 수 있는 이동수단을 확보하고 이라크 진출기업 20개사의 국내 관계자를 외교부로 불러 비상계획을 논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에 앞서 이라크 사태를 보고받고 “경제활동도 중요하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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