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여행이란… 나에게 이르는 가장 멀고 확실한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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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이 자주 말해질 즈음의 전조는 그것이 증발되고 결핍되었을 때다.격렬히 건강을 이야기할 때는 건강을잃었을 때다.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낄땐, 이미 스스로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어 사그라질 때인 것처럼 말이다. ―그 길 끝에 다시(백영옥 외 6명·바람·2014년) 》

요즘 서점가에 여행 책이 넘쳐난다. 최근엔 여행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 몇 주째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책으로나마 달래려는 이들이 많아진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여행소설집이다. 소설가 7명이 속초 정읍 원주 제주 부산 여수 춘천 등 7개 도시를 배경으로 흔한 여행 책에서는 보기 힘든, 낯설고도 따뜻한 일곱 여정을 그렸다.

춘천(春川)은 ‘spring stream, 봄날의 시내’다. 춘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소설가 김미월은 춘천이라는 지명이 한자로 그렇게 예쁜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소설 속 도시는 아주 익숙한 곳들이지만 때론 그만큼 낯설기도 하다. 백영옥이 그린 속초는 겨울바다의 낭만이 아니라 이혼한 남편의 부고를 듣고 찾아가는 허망한 도시일 뿐. 직장 때문에 부산으로 간 함정임은 말 못하는 외국인 소녀와 타향을 찾은 남자 이야기로 자본에 잠식된 마천루 해운대를 전한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이기호에게 고향은 “우리는 원주라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 그냥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된” 곳이다. “그건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마음에 쏙 들어 어울렸다기보단 그냥 어느 날 옆에 보니 그들이 있었고….”

책 말미의 작가 인터뷰도 흥미롭다. 한 소설가는 여행을 “나에게 이르는 가장 멀고 확실한 길”이라 했고, 다른 이는 “나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라 했다. 여름의 길목 6월에 ‘떠난 후에도 좋지만 떠나기 전이 더 좋은’ 여행을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여행 에세이#춘천#봄날의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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