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초원 단원고 교사 아버지 “늦잠 많던 너의 방엔 기척이 없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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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딸 찾아 납골당에

김성욱 씨(55)는 군 복무 시절부터 들인 버릇대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 신문부터 펼쳤다. 딸이 쓰는 작은 방에서는 기척이 없다. 딸은 공주대 사범대를 나와 집 근처 고교에 부임했지만 어릴 적처럼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자주 걸렀다. 김 씨는 ‘초원아,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하고 말하려다 말았다. 딸의 방문을 열자 침대, 옷장, 책상,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소탈한 성격대로 애써 꾸민 흔적이 없는 방이다. 딸이 평소 좋아하는 곰 인형 정도가 스물여섯 살 아가씨의 방이라는 것을 말해줬다.

김 씨는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 뒤 차를 잡아탔다. 29년 동안 경기 안산시의 작은 전자회사에 다닌 김 씨는 평일인데도 회사가 아니라 경기 화성시의 납골공원으로 향했다. 김 씨는 최근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다.

“아빠들은 딸을 무지무지 좋아하거든. 그걸 딸들은 몰라….”

김 씨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교사 김초원 씨(26)의 유골이 담긴 납골함 앞에 선 뒤 딸의 방에서 챙겨 나온 곰 인형을 내려놓았다. 김 씨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김 교사의 아버지다.

세월호 침몰 전 김 씨의 일상은 여느 단란한 가정과 다르지 않았다. 오후 7시쯤 회사에서 퇴근해 아내의 집안일을 도왔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을 먹고, TV를 봤다. 딸은 퇴근이 늦어 잠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곧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만 애정 표현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 초원 씨가 웃기만 해도 김 씨는 종일 기분이 좋았다.

“딸은 가수 서태지를 좋아했어요. 대학 3학년 때도 서태지 콘서트 표를 사줬더니 공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공연을 보고 가더군요. 다음 해에 또 사줬죠.”

4월 16일 이후 두 달. 모든 것은 전과 달라졌다. 딸의 시신이 발견되고 며칠 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넋이 나간 듯해 자리에 있어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자주 탈진하고 이유 없이 아팠다. 딸을 데리고 걸어가는 부모들을 보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계획도, 낙도 없고, 그날이 그날이고,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고…. 모든 게 무의미해졌어요. 초원이 남동생도 대학도 졸업시키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면 김 씨의 발길은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합동분향소로 향했다. 같은 처지의 희생자 가족들이 서로를 달랬다. 전남 진도에도 5번 갔다.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수색 진척 소식을 기다리다 실내체육관에서 오전 1, 2시에 잠들면 3, 4시에는 잠이 깼다.

부모들이 자식의 시신을 찾아 안산으로 올라오면 김 씨도 함께 올라와 문상을 했다. 딸이 가르쳤던 제자들의 빈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학부모들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학생들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김 씨를 어떤 학부모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5일에도 김 씨는 사흘째 진도에 머물고 있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씨는 남은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발견되기를 기원했다. “대조기라 물살이 세서 걱정이네요. 오늘은 남학생 가방 하나, 여학생 가방 세 개만 올라왔더라고요. 실종자들이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요….”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단원고 교사#세월호 유족#세월호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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