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이 ‘밥’이라면 나머지 노래는 반찬에 불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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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美선교사 호머 헐버트, 서양 연회곡 ‘타라라…’에 비유 격찬
“한국문학은 고유의 독창성 지녀”… ‘中문학 아류’ 게일 주장 정면 반박

민요 ‘아리랑’에 대한 연구 내용을 담은 호머 헐버트의 ‘한국의 성악’(1896년) 중 일부. 아리랑의 후렴을 한글로 인쇄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소명출판 제공
민요 ‘아리랑’에 대한 연구 내용을 담은 호머 헐버트의 ‘한국의 성악’(1896년) 중 일부. 아리랑의 후렴을 한글로 인쇄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소명출판 제공
“한국인에게 이 노래가 차지하는 음악적 위상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밥’과 같다. 나머지 노래는 모두 ‘반찬’에 불과하다.”

19세기 말 20년 동안 조선 땅에 체류했던 미국 북감리교 소속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1863∼1949·사진)가 1896년 펴낸 ‘한국의 성악(Korean Vocal Music)’이란 책에서 ‘아리랑’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 고종 황제의 외국인 자문이었던 헐버트는 조선 독립과 항일운동을 도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리랑 등 한국의 노래와 문학을 열정적으로 연구한 외국인 1세대 한국학 학자이기도 하다.

김승우 전주대 교수(국어교육)가 19세기 한국문학을 연구한 서양인 9명의 저작을 분석한 ‘19세기 서구인들이 인식한 한국의 시와 노래’(소명출판)는 한국학 학자로서 헐버트의 업적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헐버트는 ‘한국의 성악’에서 아리랑의 당대 위상을 서양 연회곡 ‘타라라 붐디아이’에 비유한다. 이 곡은 1890년대 초 미국과 영국에서 수년에 걸쳐 인기를 누렸으며 당대 영미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드물었다.

그는 ‘경기 자진 아리랑’ 또는 ‘문경 아리랑’으로 보이는 아리랑을 채집해 멜로디를 오선지에 옮기고 가사를 영어로 번역했다. 그는 특히 아리랑 후렴구 앞의 사설부를 즉흥 변주해 끝없이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인이야말로 즉흥연행의 달인”이라며 아리랑의 개방성을 간파했다. 또 아리랑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춘 노래라고 봤다.

“(아리랑을) 우리들(서양인) 자신의 대중음악과 비교해 보면, 비록 서로 다르게 차려입고 있을지라도 인간 본성은 동일하며, 동일한 정감은 (동일한) 표현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한국문학을 중국문학의 아류로 봤던 대다수 서구인의 편견과도 싸웠다. 당시 아류론을 주장했던 캐나다 출신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조선 사대부가 지은 글은 중국과 한문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국문소설 ‘심청전’조차 등장인물과 배경은 중국 (송)나라”라며 한국문학의 독자성에 회의적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헐버트는 1900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 발표 논문에서 이를 반박한다. 그는 “한국이 문학의 전범을 중국에서 차용한 것은 맞지만, 한국문학만의 독특한 요소가 있다”며 “영시(英詩)도 형식은 유럽 대륙에서 기인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김승우 교수는 “게일은 사대부가 지은 한시나 한문소설 같은 한정된 자료를 접한 데 반해, 현장 연구를 중시한 헐버트는 시조나 잡가, 민요처럼 구비성이 강한 자료를 폭넓게 접해 한국문학의 민중성과 고유성을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헐버트#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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