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박주영-이호 등 유학파가 경험한 브라질 축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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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뛰라하니… 개인기 저절로”

브라질 유학파 출신 국가대표 이호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스위스와의 G조 3차전에서 상대 공격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동아일보DB
브라질 유학파 출신 국가대표 이호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스위스와의 G조 3차전에서 상대 공격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동아일보DB
“브라질은 브라질의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의 눈과 유럽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 못합니다.”

1988년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민을 떠나 한국 선수들의 축구유학 프로그램을 8년간 진행했고 현재는 브라질 선수들의 아시아 진출을 돕고 있는 조남윤 톱시드스포츠 사장(56)은 “브라질은 축구가 전부인 나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축구 대륙’ 유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단다.

조 사장은 이용수 세종대 교수와 신문선 성남 FC 사장 등과 서울체고 1기(1974년 입학)로 함께 공을 찼던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고교시절 무릎을 크게 다쳐 선수생활을 일찌감치 그만뒀고 축구 강국 브라질로 떠나 1996년부터 ‘파울로스찡안클럽’을 만들어 한국선수들의 축구유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국의 브라질 축구유학을 진행한 ‘1세대’다. 그의 도움을 받아 연간 평균 30∼40명씩 수백 명이 브라질을 다녀갔지만 크게 성공한 선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공격수인 박주영(아스널)과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 수비수 이호(상주 상무), 이진호, 송한복(이상 광주 FC) 등이다. 지금까지 한국선수들은 연간 평균 100여 명씩 2000여 명이 브라질 축구 유학을 다녀왔지만 성공한 선수가 드물다. 이유가 뭘까.

“브라질에선 강요하지 않는다. 선수들을 자유롭게 놔둔다. 훈련에선 좁은 공간에서 펼치는 기술 등 세밀한 축구를 가르친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개인기가 나온다. 이렇게 자유롭게 배우고 돌아오면 다시 억압적인 한국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

조 사장이 브라질 축구유학을 경험한 선수들과 상담한 결과 크게 3가지 이유에서 한국에 다시 적응하지 못했다. 먼저 국내 지도자들의 유학파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 고교 선수의 경우 보통 3학년이 주전으로 뛰기 때문에 1, 2학년 때 브라질 단기 유학을 많이 다녀오는데 복귀하면 ‘건방지다’며 홀대받는단다. 둘째론 선후배 개념이 없는 브라질에서 돌아오면 억압하는 선배들 등쌀을 이기지 못한다. 셋째 힘을 아껴 효과적으로 뛰라는 브라질과 달리 국내에서는 ‘왜 안 뛰느냐’고 혼을 내는 탓에 축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2001년 브라질 유학을 다녀온 이호는 “사실 브라질 유학 가는 선수들 중 대부분은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이다. 그래서 돌아와서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브라질 축구와 관련해 박주영이 밝힌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구 청구고 시절 포항 스틸러스의 도움을 받아 브라질 유학을 1년 다녀온 박주영에게 ‘뭘 배웠느냐’고 묻자 “브라질에선 페널티지역 내에선 안방같이 쉬라고 배웠다”고 한 것이다. 브라질에선 공격수는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을 넣어야 하니 페널티지역 내에서는 안방처럼 편하게 있다가 볼이 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공격수가 안 뛰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탓에 좌우는 물론이고 미드필드 지역까지 오가며 움직이다 정작 찬스가 오면 지쳐서 골을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브라질 축구도 유럽화되면서 페널티지역 내에서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과거에 ‘브라질 9번(공격수)은 움직임이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 사장은 “브라질은 브라질이고 한국에 오면 다시 그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적응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호가 기억하는 브라질은 ‘축구밖에 없는 나라’였다. 조그만 공간에 공 하나만 있으면 모여서 공을 찼다. 경기가 열리는 날엔 좋아하는 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이호는 “브라질에선 어릴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 흉내를 내며 논다. 여기저기 동네마다 축구 경기도 많고 TV 중계 등 언제 어디서든 축구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선수를 만들어 따라한다. 그렇게 기술을 키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사장에 따르면 브라질은 네이마르(바르셀로나) 같은 슈퍼스타 외에도 도시별 영웅이 있다. 남녀노소가 그 영웅에 열광하고 선수들을 모방한다. 이런 잘하는 선수 따라하기 문화가 기술축구의 원천인 셈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박주영#이호#브라질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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