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67>여자들의 까다로운 약속 잡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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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전에 모임 갖기로 했잖아? 언제로 잡을까?’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반응이 없다. 남자들이 원래 그렇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드문드문 답이 온다. 모임의 총무를 맡은 친구는 약속을 잡기도 전부터 진이 빠진다. 모이는 것보다 어려운 게 약속을 잡는 일이다.

여자들은 어떨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 여성 상대 직업인 음악학원 강사들에게 들어보았다. 초등 저학년 엄마들과 스케줄을 잡다보면 속이 타서 그을음이 올라올 정도라고 한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문자와 통화를 거쳐 겨우 조율을 해놓으면 이번엔 엉뚱한 엄마가 시간을 틀어놓는다.

묵묵부답 남자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약속을 잡는 데는 적극 반응하는 편이다. 다만 자기가 언제 가능한지 얘기해주기보다는 제시된 스케줄에 ‘글쎄요’ 같은 유보적인 답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다른 멤버들은 어떤지 ‘간을 보는’ 측면도 있다. 혼자만 한가하게 여겨진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므로.

여성들의 유보적인 반응은 진짜 속마음이기도 하다. 그때의 상황이나 기분을 지금 장담할 수 없으므로 ‘아직 모르겠다’는 유보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혹시 모르는 것’은 모든 여성의 기본이다. 혹시 몰라 가방에 별의별 물건들을 다 가지고 다녀야만 하는 패턴의 연장선이다. 마침 그날 가장 친한 친구가 당장 만나고 싶다며 연락을 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 중에도 약속을 잡는 데 심히 유보적인 이가 있다. 별일도 없으면서 이리저리 틀고 떡처럼 주무른다. 모임에서 주도권을 쥐거나 특별 대접을 받는다는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서다. 남자들끼리는 차츰 이런 친구를 빼놓고 모이게 된다. 성가신 멤버를 참기가 어려워서다.

반면 여자들 모임에는 인내가 있다. 중년 여성들의 경우 그런 멤버의 흔들기에도 웬만하면 맞춰준다. 그러고는 모두가 모인 뒤에 살짝 무시해준다. 자기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표를 흔들어댄’ 친구의 말에는 호응을 해주지 않는다.

관계 게임에 익숙한 여성들은 스케줄을 자꾸 틀어버리는 친구의 바람이 ‘나를 좀 알아달라’는 것임을 안다. 그래서 알아줄 듯 불러내어 각별하게 알아주지 않는다.

여성들의 모임은 겉으로는 화기애애하게 보이지만 이면을 보면 나름 냉엄한 규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런 뉘앙스다. ‘우리는 너를 필요로 하지만 네가 없다고 우리 모임이 깨지는 것은 아니야. 또한 너를 아끼지만 너에게 집착하는 일은 없을 거야.’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속되는 여성 모임은 이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애정과 관심, 그리고 견제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상복 작가
#여자#약속#스케줄#필요#집착#애정#관심#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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