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미]“개는 개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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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김현미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우리 애가 요즘 잘 안 먹어서 걱정이에요.” “우리 애가 드디어 대소변을 가려요.” “우리 애는 발소리만 듣고도 난 줄 안다니까.” 우리 애는 사람이 아니라 개다. 우리 집에도 ‘행운이’라는 이름의 혈기왕성한 네 살짜리 수컷 보더콜리가 산다. 퇴근 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이 녀석에게 제일 먼저 건네는 말이 “엄마 왔다”이다. 휴일에 행운이가 공을 물고 와서 놀자고 채근하면 컴퓨터 앞에서 빈둥거리던 아이들이 잔소리를 듣는다. “오늘은 형, 누나가 좀 놀아줘라.”

개그맨 전유성 씨는 2009년 처음으로 경북 청도에서 반려동물을 위한 음악회 ‘개나 소나 콘서트’를 열었다. 이후 해마다 복날에 즈음하여 열리는 이 음악회를 보러 1만 명이 몰려와 청도의 명물이 됐다. 전 씨가 개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는 희한한 발상을 하게 된 계기는 방송인 최유라 씨의 “우리 애(개)가 아파서 병원 갔다 왔어”라는 말 때문이라고 한다. 개도 가족이라면 문화생활을 같이하는 게 뭐가 이상한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스스로 반려동물의 엄마 아빠 노릇을 하며 행복해한다. 개의 학명 ‘카니스 루푸스 파밀리아리스(Canis lupus familiaris)’에 ‘가족(원래 친근하다는 뜻)’을 가리키는 ‘파밀리아리스’가 포함돼 있는 것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반려견에게 유기농 사료를 먹이고,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데려가고, 공주 옷을 입힌다. 엄마 아빠가 외출한 사이 혼자 집을 지키는 ‘아이들’을 위해 개 전용 방송 채널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밑에서 개들도 행복할까.

올해 초 EBS의 다큐 프로그램 ‘하나뿐인 지구’는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주인과 함께 있을 때는 사랑스럽기만 한 반려견이 혼자 집에 있을 때는 180도 달라진다. 물건을 마구 물어뜯고 아무 데나 용변을 보고 늑대처럼 울부짖는다. 개 훈련사인 강형욱 씨는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동료를 부르거나 주인을 찾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분리 불안증을 보이는 개들은 심한 경우 자기 생식기나 발가락을 물어뜯기도 한다.

방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동물학자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말이다. “개는 개죠.” 개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며 ‘우리 애가 행복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순전히 착각이다. 분리 불안증으로 예민하고 난폭해진 개를 치료하는 방법은 끌어안고 비비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운동을 시키는 것이다. 개는 개의 방식으로 사랑해야 한다. 강형욱 씨는 최근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제목의 반려견 교육서에서 ‘가지고 논다’는 의미의 ‘애완견’이라는 말부터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친구이고 가족이라면, 강아지를 혼자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재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에 줄을 매어 평생을 묶어 놓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 강아지는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는데, 왜 당신은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고,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강아지를 키우려 하나요? 강아지를 왜 자녀의 장난감으로 키우려고 하나요? 혹시 이 글을 읽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비단 개뿐이랴. 고양이, 토끼, 새, 햄스터 등등 애완이라는 이유로 사람과 함께 살게 된 모든 생명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뜨끔하다. 나는 결코 좋은 ‘엄마’가 아니었음을 반성한다.

김현미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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