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 총리 후보의 역사인식, 충분한 설명과 검증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3일 03시 00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교회와 대학에서 한 강연이 국민 정서에 반(反)하는 역사인식을 담고 있다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제 KBS 보도에 따르면 교회 장로인 문 후보자는 2011년 6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강연하며 “우리가 36년의 고난을 겪은 뒤에야 독립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남북 분단에 대해서는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4월 서울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강연도 했다. 군이 위안부를 동원한 사실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 각료들의 망언이 이어지는 마당에 너무 나간 발언이다.

방송 보도만 보면 문 후보자의 역사 관련 발언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시간이 넘는 강연이면 특정 대목만 따내서 보도할 것이 아니라 전체의 맥락과 본래의 강연 취지를 살려 내보내는 것이 공영방송다운 공정한 보도라고 할 수 있다. 문 후보자 측은 교회 강연 동영상을 처음 내보낸 KBS 보도에 대해 “강연의 특정 부분만 부각되어 전체 강연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며 “한국사의 숱한 시련들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뜻이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총리실도 어제 “교회 발언 동영상에 대해 일부 언론이 악의적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며 명예훼손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모두 살펴보면 그의 해명은 일리 있다. 한국교회연합은 어제 “성경적 역사관에 입각한 내용으로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될 수 없는 발언”이라며 “강연 전체의 맥락을 살피지 않고 일부만 문제 삼는 마녀사냥식 몰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진영 논리에 따라 문 후보자에게 ‘친일 프레임’과 ‘극우 프레임’을 씌워 악의적 낙마 공작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중앙 언론사의 주필까지 지낸 인물이 과연 왜곡된 역사인식을 지닌 것인지, 왜곡돼 전달된 것은 아닌지 철저히 검증해야 할 이유다.

문 후보자는 2002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중앙일보에 250여 편의 기명 칼럼을 썼다. 사실관계와 논리적 정합성에 문제가 없다면, 그가 무슨 내용을 다뤘든 사상과 표현의 자유이자 언론의 자유에 속한다.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책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해서 총리 자격이 없다는 야당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말과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언론인에게는 숙명이다. 문 후보자가 어제 교회 강연에 대해 물은 기자들에게 “무슨 사과할 게 있느냐”며 가볍게 넘겼다가 나중에야 보도 자료를 통해 유감을 표명한 태도는 적절치 못했다. 설령 현재 제기된 사안의 배후에 정치적인 동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역시 검증의 일환이므로 보다 겸허하고 소상하게 자신의 발언과 역사인식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은 청문회까지 시간을 끈다고 그냥 수습될 단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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