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속빈 강정’ 좌파 교육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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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분열은 구조적 문제… 앞으로 좌파 득세 계속될 것
콘텐츠 부족의 한계…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아
사교육 늘어나고 부모에 따른 격차 심화할 우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17개 시도에 13명의 좌파 교육감이 당선된 결과에 유권자들은 놀라움을 표시했지만 결코 이변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 낙선한 한 우파 후보는 “무지의 장막 속에서 똘똘 뭉친 좌파 후보를 넘어설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민들이 교육감 후보들에 대해 누가 누군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좌파 후보들은 30%대의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경우 첫 직선제 후보였던 2008년 주경복 씨의 득표율은 38.3%였다. 2010년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됐을 때의 득표율은 34.3%였고, 2012년 재선거에서 이수호 후보 역시 37%를 기록했다. 이번에 당선된 조희연 후보의 득표율도 이와 비슷한 39.1%다. 조 후보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3위에 그친 것은 ‘숨은 표’가 드러나지 않았던 탓이 크다.

좌파 후보들은 선거 과정에서 ‘친(親)전교조’라는 공세에 시달려야 했지만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이 결집해 특정 좌파 후보를 찍으면 우파 후보는 단일화를 하지 않는 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낙선한 후보들의 구차한 변명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교육계에서 우파 후보들은 조직 기반이 없고 이렇다 할 중심 세력도 없다. 평생 교육계에서 종사해온 후보들이 무슨 정치적 역량이 있고 전략과 조직을 갖고 있겠는가. 반면 좌파 후보들은 교육계의 울타리를 넘어 전체 좌파 진영 차원에서 단일화 등을 주도하는 구심점이 존재한다. 오랜 재야 투쟁을 통해 쌓아올린 그들만의 힘이다.

우파 후보도 단일화하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도, 이번 선거에서도 우파 후보의 단일화는 실패했다. 다음 선거에서도 단일화는 어려울 것이다. 후보가 여럿 나오겠다면 막을 방법이 우파에는 없다. 2010년 6명의 좌파 교육감을 당선시키면서 몸을 푼 좌파 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13명을 배출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들 손에 맡겨질 한국 교육의 운명이다. 2009년 첫 좌파 교육감으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이들이 보여준 결정적 문제점은 콘텐츠 부족이었다. 쉽게 말해 지역교육을 활성화하는 교육감의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기대 이하였다. 자신들을 지지해준 전교조를 감싸고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것은 ‘의리’와 ‘투쟁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학부모들 앞에서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것은 교육 그 자체다.

이들이 내세운 것으로 혁신학교가 있긴 하지만 어떤 성격인지는 생긴 지 4년이 넘는 지금도 모호하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주고, 연간 학교마다 8000만 원을 더 지원하고,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학교로 언뜻 이해된다. 또 토론과 협력수업, 인성교육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런 식의 학교가 안고 있는 맹점은 교육적 효과에 대한 검증이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인성교육의 성과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잘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이다. 교육감이 책임 질 일이 없다. 이런 혁신학교를 15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혁신학교보다 학급당 학생 수도 많고 예산 지원도 빈약한 대다수 다른 학교들은 또 어쩌라는 것인지 뾰족한 대책이 없다. ‘평등 교육’을 외치는 좌파 교육감들이 ‘차별 교육’에 앞장서는 꼴이다.

이번에 당선된 좌파 교육감들은 선거 때 공동 공약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이른바 3대 공약 가운데 ‘학생 안전’과 ‘교육 비리 척결’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고 ‘공교육 정상화’에 눈길이 갔으나 일반고를 살리겠다는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콘텐츠 공백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반면 무상 지원, 서울대 폐지, 역사교과서 반대 등 정치적 공약들은 흘러 넘쳤다. 이들이 당선된 뒤에 처음 한 일은 사흘 만에 자기들끼리 회동해 편 가르기와 세력 과시를 한 것이었다.

‘교육 소통령’이라는 교육감들이 정작 해야 할 일에는 능력과 관심이 없다면 공교육은 더 나사가 풀릴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교육은 다시 엄마 손으로 넘어간다. 부모의 열정과 경제력이 학생 개인의 미래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교육은 확대되고 서민과 소외계층은 더 힘들고 막막해진다. 서민을 위한다는 좌파 교육의 역설이다. 학생 개인뿐 아니라 오로지 인적 자원만 갖고 생존해온 국가의 장래도 걱정이다. 교육감으로 뽑은 이상 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지금으로선 큰 기대는 힘들어 보인다. 불행한 일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좌파#서울시교육감#단일화#혁신학교#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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