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시장의 대표적 블루칩 작가인 오치균 씨(58·사진)는 지난해 여름 숨을 못 쉴 것 같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갑작스러운 하반신 마비 증상까지 겹쳐 공포와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젊었을 때 앓던 공황장애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11∼25일 서울 인사동길 노화랑에서 열리는 ‘오치균, 빛’전은 그 상처와 고통에서 길어 올린 결실을 선보이는 자리다.
컬렉터들이 열광하는 감나무 그림 때문에 ‘감 작가’로 알려진 그가 선택한 새 화두는 빛이다. 작업실의 어둠을 파고드는 한 줄기 빛과 빈 의자, 노란 빛을 내는 램프 등 실내 풍경이 쓸쓸하면서 평화롭다. ‘뉴욕’ ‘사북’ ‘산타페’ ‘감’ 등 그의 작업에서 빛은 중요한 요소였지만 광원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다. 개막에 앞서 전시장을 둘러보던 화가는 “독일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은 절대 꺼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영원과 이어진 듯한 촛불을 생각하며 ‘나는 꺼질 수 없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그린 작업”이라고 말했다.
화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15년간 운동으로 단련한 탄탄한 몸, 흰 남방 아래로 언뜻 비치는 온갖 동물 문신에 위압감을 느낀다. 그는 “‘동물의 왕국’ 같은 세상에서 문신은 일종의 보호색이자 나의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다.
붓 대신 손가락에 물감을 찍어 그리는 화가는 “내 작업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몸으로부터 나온다”며 이 말을 덧붙였다. “감만 그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감 그림만 찾으니 다른 작품은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 솔직히 시장성 때문에 감 그림에 머무른 점도 있었다. 아픈 다음에 알게 됐다. 그림은 내게 생명이란 것을.” 02-73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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