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달동네’서 아기자기한 예술마을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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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in 서울]관광명소로 뜨는 창신동
박수근-김유정 등 본격 작품활동… 1970년대엔 봉제공장 메카로 우뚝
드라마촬영지 등 골목투어 개발 활기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흥미로운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낡고 평범한 서민동네(왼쪽 사진)지만, 가까이 가보면 ‘미싱’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패션의 메카다. 최근에는 아기자기한 문화골목으로 변신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역 커뮤니티 공간인 ‘뭐든지 도서관’.
 서울 종로구 제공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흥미로운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낡고 평범한 서민동네(왼쪽 사진)지만, 가까이 가보면 ‘미싱’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패션의 메카다. 최근에는 아기자기한 문화골목으로 변신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역 커뮤니티 공간인 ‘뭐든지 도서관’. 서울 종로구 제공
비탈길을 따라 낡은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종로구 창신동의 진면목은 눈으로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래 봬도 과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예술가들이 거쳐간 ‘예술촌’이었다. 지금은 동대문의 봉제장인들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1970, 80년대 옛 모습을 간직한 아기자기한 예술마을로 바뀌고 있다.

조선시대에 창신동은 한성부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에 속했는데, 가운데 글자를 따서 현재의 동네 이름이 됐다. 붉은 열매인 복숭아와 앵두나무가 많이 열려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으로 불렸다. 경관이 수려하고 도성과 가까워 도성 안 사대부의 별장도 많았다. 실학자 이수광도 이곳에서 ‘지봉유설’을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20세기 들어서는 유명한 예술가가 많이 거쳐 갔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은 1952년부터 10년간 창신동에 살며 대부분의 그림을 이곳 자택에서 그렸다. ‘봄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1908∼1937) 역시 창신동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예술세계도 어린 시절을 보낸 창신동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시장의 생산기지로 자리 잡고 있다. 봉제공장 35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신진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이곳 봉제공장에서 만들어져 동대문을 통해 세계로 뻗어간다. ‘패션의 메카’인 동대문시장을 지탱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서민 주거지역이었던 창신동에 봉제공장이 밀집한 것은 1970년대부터. 평화시장 주변 임대료가 오르자 그곳에 있던 봉제공장들이 대거 창신동으로 옮겨왔다.

최근에는 미싱 소리가 잦아들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봉제공장이 떠난 자리에 주민이 직접 만든 도서관, 전시관, 방송국, 문화·예술공간이 생겨나면서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변화의 중심에는 주민이 스스로 만든 마을공동체 ‘창신마을 넷’이 있다. 원단이나 수명이 다한 봉제기계판 등 쓰레기로 넘쳐나던 마을의 자투리 공간은 주민들이 모여 예쁜 텃밭과 쉼터, 전시관 등으로 가꿨다.

창신동 내에는 서울 한양도성, 흥인지문, 단종과 정순왕후 관련 유적, 채석장 절개지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도 많다. 대학로, 이화동 벽화마을, 동대문 문구완구시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주변 관광지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도 창신동을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봉제마을박물관을 조성하고 봉제거리(의류 생산체험), 드라마 촬영지, 쇼핑 등을 연계한 골목투어코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창신동 지역의 산업문화유산을 활용해서 조형물, 포토존, 안내표지판 등을 설치하고 발굴된 이야기에 스토리를 입혀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의류 생산기지이자 독특한 문화가 발전한 창신동을 인사동과 동대문, 대학로를 연계한 관광벨트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창신동#비탈길#예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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