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장검이 일본도?… 그 說을 단칼에 베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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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재 경인미술관장, 제조 420주년 맞아 ‘속설과 실체’ 규명
전통도검과 달리 살짝 휘었지만 고려때도 曲刀 존재
임란때 日양식 일부 수용 길고 강하게 개량
칼자루-칼집-문양 형태 모두 조선식
197cm 4.3kg… 실전아닌 의장용

보물 제326호 충무공 이순신 장검. 일반적 도검 분류에 따르면 날이 한쪽만 있으면 도(刀), 양쪽 다 있으면 검(劍)이라 한다. 충무공 장검은 외날이지만 ‘이충무공전서’에 장검으로 명기돼 있어 1959년 보물 지정 당시에도 장검이라 이름 붙였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제공
보물 제326호 충무공 이순신 장검. 일반적 도검 분류에 따르면 날이 한쪽만 있으면 도(刀), 양쪽 다 있으면 검(劍)이라 한다. 충무공 장검은 외날이지만 ‘이충무공전서’에 장검으로 명기돼 있어 1959년 보물 지정 당시에도 장검이라 이름 붙였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제공
《 “충무공의 장검은 조선 환도를 기본으로 외래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결합돼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칼이다.” 보물 제326호로 지정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장검 2자루는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칼이다. 조선 도검 자체가 드물게 남은 데다 왜란의 풍파에서 조국을 수호했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민족의 가슴에 자긍심으로 자리 잡았다. 실물은 아니지만, 서울 광화문에 선 장군 동상의 허리춤을 줄곧 지켜와 대중에게 익숙하다. 》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 모셔진 충무공 영정.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 모셔진 충무공 영정.
올해는 1594년 장검이 제작된 지 7주갑(周甲), 420주년을 맞는 해. 하지만 국민적 사랑을 받는 보물임에도 실체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오히려 세간에 여러 설이 난무하며 오해받는 대목이 많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펴낸 전시도록 ‘겨레를 살린 두 자루 칼, 충무공 장검(8월 31일까지)’에 실린 이석재 경인미술관장의 ‘이 충무공 장검 분석―성웅의 칼, 그 속설과 실체’를 보면 그간의 궁금증을 상당히 풀 수 있다.

먼저 충무공 장검이 일본도란 시각은 사실이 아니다. 단지 필요에 의해 일본도 양식을 일부 받아들였을 뿐이다.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200년이 넘는 평화 시기를 보냈다. 이 때문에 오랜 전란을 겪은 일본처럼 도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짧고 가는 칼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맞붙자 우수한 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길고 강한 일본도의 칼날을 수용한 것이다.

이 관장은 “왜군이 조총을 앞세워 쳐들어오자 이에 대항해 조선도 조총을 생산해 맞선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당시 의병장 곽재우(1552∼1617)와 권응수(1546∼1608)의 장검도 일본도의 칼날을 본떴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검이 우리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다른 양식은 대부분 조선식이기 때문이다. 칼자루와 칼집 형태, 장식이나 입사문양, 가죽 끈도 모두 한반도에서 자생했거나 오래전 중국에서 건너와 토착화한 방식이다. 흔히 장검 자체가 휜 것을 두고 “전통 도검은 직선적 형태뿐”이라 주장하는데, 고려 기록에 이미 곡도(曲刀)가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충무공 동상의 장검도 풀 오해가 있다. 한때 일본도를 차고 있다는 논란이 컸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관장은 “일본 전문가들도 자국의 가타나(刀)와 관련 없다고 확언했다”고 말했다. 동상의 칼은 일본도를 흉내 낸 조선식이 맞다. 다만 원본과 비례도 맞지 않고 장식 크기나 간격도 왜곡됐다. 고증이 부족한 ‘졸작’인 건 분명하지만, 일본도는 아니다.

충무공의 장검은 2자루가 각각 197.2cm와 196.8cm(무게 약 4.3kg)에 이른다. 그래서 자신의 키보다 큰 칼을 휘두르는 장군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이 관장은 “이 칼들은 실전이 아닌 의장용”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칼날에 격검흔(擊劍痕·검이 부딪친 흔적)이 없다. 게다가 조선후기 문신 박종경(1765∼1817)이 지은 ‘원융검기(元戎劒記)’에 “공이 실제 사용한 검은 쌍룡검(雙龍劒)”이란 문구가 나온다. 쌍룡검은 양날을 쓰는 검으로 길이가 90∼100cm로 추정된다.

의전 목적이었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과학적 분석 결과 충무공 장검은 열처리 흔적이 확인됐으며, 오랜 세월에도 부식이 현저히 낮다. 잡 성분이 섞이지 않은 양질의 쇠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담금질했단 뜻이다. 이 관장은 “충무공 장검은 조선의 수준 높은 제철 기술과 공예 문화를 바탕으로 적의 무기 양식마저 우리 것으로 받아들인 특급 명품”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장검#충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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