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 가수, 끝내 恨 못풀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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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배춘희 할머니 별세… 생존자 54명으로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가 8일 한(恨) 많은 삶을 마쳤다. 향년 91세.

경기 광주 ‘나눔의 집’ 측은 “배 할머니가 8일 오전 5시경 노환으로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배 할머니는 192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중국 만주로 끌려갔다.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정신대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고 자원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떠났던 길이 지옥이 될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광복 뒤 고국에 돌아왔으나 배 할머니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홀로 지내며 엔카 아마추어 가수를 하다가 1980년대 초 한국에 돌아와 정착했다. 하지만 믿었던 친척에게 사기당해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잃었다.

1997년 5월부터 나눔의 집 생활을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건강이 나빠져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할머니 정기 수요집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거동마저 불편해져 침상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과 노래, 장구 연주에 능했으며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해 나눔의 집에서도 ‘재주꾼’으로 통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배 할머니는 방문객이 오면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하곤 했다. 노래를 워낙 잘하셔서 나눔의 집 할머니 사이에서는 연예인 또는 가수로 통하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배 할머니는 생전 많이 배우지 못한 점을 후회하면서 경기 김포 중앙승가대학에 장학금 3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031-780-6167)에 차려졌으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나눔의 집 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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