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한국 근대건축, ‘분단’ 소재로 미술올림픽 금메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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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첫 황금사자상]


“세계 건축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의 근대 건축이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한국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안창모 경기대 교수)

“미술 올림픽에서 한국의 건축적 실천이 세계적으로 처음 인정받았다. 건축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건축과 건축가가 모두 인정받은 것이다.”(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건축 축제인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7일(현지 시간) 남북한 근대 건축을 다룬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하기 시작한 후 한국관이 1등상을 수상한 것은 미술전과 건축전을 합쳐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반다린 심사위원장은 “한국은 긴장이 고조된 정치 상황에서 새롭고 풍부한 건축 지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전시 형식을 통해 건축적 서사를 지정학적 현실로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2등상인 은사자상은 칠레가, 3등상인 특별상은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가 받았다.

남북한의 근대 건축사 100년을 조망한 한국관의 전시 ‘한반도 오감도’는 5일 개관 직후부터 65개 참가국 중 최고라는 평과 함께 수상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개막식 전 각국의 전시관을 돌며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들이 유독 한국관에 오래 머물며 관심을 표했기 때문이다.

한국관의 1등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베네치아(베니스) 카스텔로공원 구석에 있는 240m²(약 73평) 규모의 한국관에는 외국인들이 몰려들어 전시를 관람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이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한 지 28년 만에 이룬 쾌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 ‘분단’은 세계가 주목하는 이슈

가장 큰 수상 비결은 분단이라는 소재의 힘이다. 올해 국가관의 공통 주제가 ‘근대성의 흡수: 1914∼2014’로 정해지자 조민석 커미셔너(48)는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강조한 전시로 승부수를 던졌다. 남북한 공동 참여는 불발됐지만 전시물의 60%를 북한 관련 자료와 작품들로 채웠다. 건축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북한만의 독특한 건축사에 세계 건축계가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공동 큐레이터인 안창모 교수는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교류 없이 독자적인 도시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념이 도시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일한 곳”이라며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전시여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분단이란 화두는 1995년 한국이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카스텔로공원에 26번째이자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 설립 허가를 받아낼 때 활용했던 카드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관 건립을 주도했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은 1994년 베네치아 시장에게 그림 편지를 보내 “베니스비엔날레 100주년(1995년)을 맞아 이념으로 분단된 유일한 국가인 남과 북이 함께 참여해 핵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당신은 노벨 평화상을 받을 것이다”고 설득했다.

○ 다국적 작가들의 힘, 공개경쟁의 힘


한국관 참여 작가 29개 팀 가운데 한국 팀은 14개이고, 15개 팀이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스페인 리투아니아 등 외국 국적의 작가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화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미술품 수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이념과 건축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채로운 시각으로 흥미롭게 풀어내 한국 근대사에 문외한인 외국인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공동 큐레이터인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는 “북한과 건축 분야의 교류가 거의 없어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와 달리 북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외국인들이 연구하고 수집해놓은 자료는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는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비공개 회의를 통해 커미셔너를 선정해온 관례를 깨고 올해 건축전부터 공개경쟁을 거쳐 커미셔너를 선정했다. 그 덕분에 조 커미셔너는 세계무대에서 먹히는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의 힘으로 국내 건축계의 선배들을 제치고 역대 최연소 커미셔너가 될 수 있었다. 조 커미셔너는 올해 건축전 총감독인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 OMA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건축전을 찾은 국내 건축가들은 한국관의 수상 소식에 “조민석의 전시 감각과, 유창한 영어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해외 인맥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경사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의 건축과 조민석이라는 건축가 개인이 모두 세계무대에서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 베니스비엔날레 ::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전. 휘트니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홀수 해엔 미술전이, 짝수 해엔 건축전이 열린다. 한국은 1986년 이탈리아관의 작은 공간을 빌려 참가하기 시작했고, 1995년 26번째로 독립된 국가관인 한국관(김석철 설계)을 건립했다. 1995년 한국관 개관 첫 회 전수천 작가를 시작으로 1997년 강익중 작가, 1999년 이불 작가 등 미술전에서는 연속으로 3회 특별상을 받았다. 1993년 미술전에서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이 독일관 공동 대표로 참가해 독일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적이 있다.

베네치아=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건축#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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