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金본위제 자본주의는 부패하고 菌본위제 자본주의는 발효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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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지음/정문주 옮김/235쪽·1만4000원·더숲
건강빵 만들면서 터득한 지혜… 마르크스 연결시켜 경제학 풀이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 ‘다루마리’가 개발한 ‘일본식빵’. 오래된 시골 고택에 서식하는 천연효모와 현지에서 자연재배한 밀가루, 그리고 일본 전통주를 빚을때 발효시키는 쌀누룩을 접목해 만든 밀과 쌀이 만난 빵이다. 이 빵집은 이렇게 천연재료로만 빵을 만들며 설탕, 버터, 우유, 계란도 쓰지 않지만 빵맛이 좋기로 소문나 일본 각지에서 단골 고객을 확보했다. 더숲 제공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 ‘다루마리’가 개발한 ‘일본식빵’. 오래된 시골 고택에 서식하는 천연효모와 현지에서 자연재배한 밀가루, 그리고 일본 전통주를 빚을때 발효시키는 쌀누룩을 접목해 만든 밀과 쌀이 만난 빵이다. 이 빵집은 이렇게 천연재료로만 빵을 만들며 설탕, 버터, 우유, 계란도 쓰지 않지만 빵맛이 좋기로 소문나 일본 각지에서 단골 고객을 확보했다. 더숲 제공
“돈에 눈이 멀어 음식 갖고 장난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 꼭 한국이나 중국처럼 선진국 반열에 못 든 나라에서 먹거리로 장난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않아서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 같은 먹거리 문화의 문제점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들려오는 개탄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뉴욕타임스 기자의 베스트셀러 ‘식탁의 배신’을 보면 선진국도 이윤에 눈이 멀어 식품 갖고 장난치는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사회가 선진화된다고 해소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시골빵집 주인이 쓴 이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모든 국가가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渡邊格·43)는 시골빵집 주인이다. 일본 혼슈 서남부 오카야마(岡山) 현 북쪽의 시골마을 가쓰야마(勝山)에서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 마리를 조합한 ‘다루마리’라는 빵집을 운영한다. 이 빵집은 여러모로 유별나다.

우선 도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 기차로도 2시간 걸리는 인구 8000명 미만의 전통 마을에 위치한다. 둘째, 인공 발효한 효모인 이스트를 쓰지 않고 옛날 고택에 사는 천연효모와 현지에서 농약은 물론이고 비료도 주지 않고 키우는 자연재배 밀로 빵을 만든다. 셋째, 일본 술을 빚을 때 쓰는 쌀누룩과 천연효모로 만든 주종(酒種)으로 밀을 발효시킨 독특한 ‘일본식빵’을 개발했다. 넷째, 일주일에 목, 금, 토, 일요일만 가게를 연다. 수요일에 재료를 다듬고 월요일과 화요일엔 전 직원이 쉰다. 다섯째, 일반 빵보다 3배가량 비싼 빵을 팔아 한 달에 2000만 원가량의 매상을 올리지만 이윤을 남기지 않고 저자 가족 넷과 직원 둘이 나눠 갖는다.

여기까지 들으면 차별화 전략을 택한 ‘괴짜 빵집주인’일 뿐이다. 진짜는 그 다음이다. 저자는 건강한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터득한 지혜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연결시켜 멋들어지게 풀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지혜’로서 프로네시스다.

빵은 4000∼5000년 전 이집트에서 야생의 효모가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몽실몽실 부풀려 올리는 현상이 발견되며 탄생했다. 야생의 효모가 반죽한 밀가루에 포함된 당분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배출하면 밀가루 속 글루텐이란 조직이 이산화탄소를 꽉 붙들어 빵 반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빵도 포도주나 치즈, 막걸리와 김치처럼 발효 식품이다!

문제는 공기 중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천연효모를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 맞춰 어떻게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빵맛이 천양지차를 보인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제빵기술은 철저히 도제식으로 전수됐는데 1920, 30년대 제빵에 적합한 효모만 인공으로 배양한 이스트 제조법이 확립되면서 숙련된 기술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이 이스트의 개발이 이윤 창출의 원천으로서 기술혁신이다. 이론적으로 기술혁신이 이뤄지면 똑같은 노동시간에도 몇 배나 많은 생산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주는 대신 여가시간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빵가게 종업원의 노동시간은 20세기나 21세기나 오전 2시∼오후 5시로 전혀 줄지 않았다. 자본가들이 시장에서 경쟁을 위해 상품가격을 낮추는 대신 언제든 대체가능한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도 떨어뜨려 동일시간의 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에 빠지면 먹거리산업은 결국 ‘싸구려 음식’과 ‘싸구려 일자리’만 제공하게 된다. 일례로 제빵업 종사자들이 계속 콧물을 흘리거나 피부병을 앓는 직업병이 수입 밀가루에 뿌려지는 ‘포스트 하베스트’라는 살충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단다. 일본 전통 술 제조법으로 추출한 주종이 수입 밀가루뿐 아니라 유기농재배 밀가루마저 부패시키지만 자연재배 밀가루를 만났을 때 건강한 빵을 발효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좋은 빵을 만드는 법은 결국 효모와 누룩 같은 ‘균(菌)’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들 균은 건강하지 못한 것은 부패시키고 건강한 것은 발효시킨다. 이스트는 부패 기능을 상실하고 무조건 발효만 시키는 ‘슈퍼 효모’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균의 대척점에 돈이 있다. 돈은 부패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한다. 그래서 돈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병들고 추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투입해 경제를 뒤룩뒤룩 살찌게 한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이윤만 늘리면 된다. 국내총생산(GDP)만 키우면 된다, 주가가 오르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비만이라는 병에 걸린 경제는 거품을 낳고, 그 거품이 터지면 공황이 찾아온다. 거품 붕괴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살쪄서 비정상이 되어버린 경제가 균형을 되찾는 자정작용이다. 그런데 부패하지 않는 현대자본주의 경제는 공황도 거품 붕괴도 허용하지 않는다.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수법을 써서 한없이 경제를 살찌우려고만 한다.”

저자는 “봉건제부터 공산주의까지 인류가 지금껏 만든 사회 시스템 중에 현재 자본주의가 가장 제대로 된 시스템”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삶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금본위제’가 아닌 ‘균본위제’로 돌아가자며 자신부터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시골빵집 주인의 통찰이 웬만한 경제학자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서는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기술혁신#노동시간#상품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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