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영웅… 버그달 찾다 숨진 참군인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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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탈영병 구하기’ 논란 가열
수색팀 소위, 포탄 날아오자 옆에 있던 부하들 밀쳐내고 산화
軍당국, 생존자에 ‘비밀 유지’ 지시… 동료들 “이제는 진실 알려야” 공개
버그달 고향 28일 환영행사 취소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탈영병 보 버그달 병장 수색 과정에서 여섯 병사의 목숨을 살리고 숨진 대런 앤드루스 소위(왼쪽)의 가족사진. 사진 출처 이라크아프간전쟁영웅 홈페이지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탈영병 보 버그달 병장 수색 과정에서 여섯 병사의 목숨을 살리고 숨진 대런 앤드루스 소위(왼쪽)의 가족사진. 사진 출처 이라크아프간전쟁영웅 홈페이지
탈레반 병사들이 눈앞에 나타나 로켓추진식수류탄(RPG)을 발사하려 했을 때 미 육군 소속 대런 앤드루스 소위(당시 34세)는 덤불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에게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들이 있었다. 고향에 두고 온 맏아들은 채 두 살이 되지 않았고 사랑하는 아내의 배 속에는 둘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누나는 1999년에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 그마저 전사한다면 부모님에게 극복하기 힘든 아픔이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앤드루스 소위는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탈레반의 포탄이 날아들기 직전 그는 자신의 양옆에 있던 병장과 통신병을 재빨리 밀쳐냈다. 이어 근처에 있던 다른 병사 5명에게 “RPG!”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포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2009년 9월 4일. 앤드루스 소위는 그렇게 산화했다. 그가 밀쳐낸 통신병 매슈 마티넥 일병(당시 20세)도 파편에 부상을 입고 이틀 뒤 숨졌다. 나머지 병사 6명은 앤드루스 소위의 희생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군 당국은 이후 앤드루스 소위에게 은성 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아프간 참전 탈영병 보 버그달 병장을 탈레반 포로 다섯 명과 맞교환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실종된 버그달 병장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작전 도중 목숨을 잃은 앤드루스 소위 등 장병 6명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 ‘데일리비스트’는 4일 당시 미군이 앤드루스 소위의 가족들에게 사망 원인을 설명하면서 ‘탈레반 지도자를 추적하던 중이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폭로했다.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미군 지휘부는 앤드루스 소위 덕분에 목숨을 건진 병사 6명에게 진실을 발설하지 말 것을 강요하고 심지어 ‘비밀 유지 각서’까지 쓰도록 했다. 5년 가까이 속아왔던 가족들은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됐다. 버그달의 석방 사실을 알게 된 동료 병사들이 ‘이제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앤드루스 소위의 아버지 앤디 앤드루스 씨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도대체 누가 영웅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버그달은 영웅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텍사스 주 캐머런이 고향인 앤드루스 소위는 참전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외할아버지는 1944년 독일군의 대반격이 펼쳐진 벌지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풀려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공군에 복무했다. 앤드루스 소위도 10대에 해군에 입대했다 부상으로 제대한 뒤 고교 풋볼 코치로 일했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 사건이 터진 뒤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다시 입대했다. 당시 그는 아버지에게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추모 페이스북을 개설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렸다. 2012년 12월 22일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오늘 네 딸이 세 살이 됐어. 너도 자랑스러울 거야.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스럽고 정말 재미있단다. 네가 아는 것처럼 정말 완벽한 아이야.”

한편 탈영 논란에 휩싸인 버그달 병장의 고향 마을인 아이다호 주 소도시 헤일리는 이날 “28일로 예정됐던 환영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버그달#아프가니스탄 전쟁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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