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한 사람을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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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집을 나서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용기를 냈다. 도무지 찜찜해서 그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맘대로 되지 않았다. 식구들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전 미사를 포기할 때만 해도 ‘오후 미사 가야지’라고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아침식사가 늦으니 점심식사도 늦어지고, 그날따라 외출도 하지 않는 식구들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의 미사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가족 중 아무도 성당에 가는 걸 배려해주지 않는 것에 속이 상했지만 ‘나 성당에 가야 하니까 한 끼는 알아서 해결하시오’라고 말하지 못한 마음 약한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그때 퍼뜩 다른 성당에 오후 10시 미사가 있다는 게 기억났다. 비가 몹시 내리는 밤길 운전이라 겁이 났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간신히 더듬더듬 찾아간 성당, 그런데 신자들이 이미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게 아닌가. 아뿔싸, 올해부터 시간이 오후 9시로 바뀌었다는 수녀님의 말씀이었다. 오늘은 되는 일이 없구나, 망연히 서 있는 그녀를 본 신부님이 수녀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불을 켜세요. 이 자매님을 위하여 미사를 올리겠습니다.”

그녀는 그 하루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만을 위한 단독 미사였다. 게다가 미사를 마친 후 기도를 하는데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성가대원들이 모두 돌아간 시간에 어디서 흘러나오는 걸까’ 살짝 눈을 떠 보니 신부님이 직접 연주를 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신부님의 멋진 연주를 더 듣고 싶어서 오래오래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행복한 마음을 되찾은 그녀가 감사 인사를 하려는데 신부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이 착한 목자 주일인데 자매님 덕분에 뜻있게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성당에 가고 싶어 안달을 한 그녀의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그날 네 번의 미사 기회를 모두 놓친 내 친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준 착한 목자.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등가(等價)로 보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때로는 살아가면서 그런 날이 있다는 것, 한 사람의 긴 하루가 한순간에 마법처럼 행복한 날로 바뀐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까. 마치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의 영화를 보고난 것처럼 친구의 사연을 듣는 내 마음도 행복했다.

윤세영 수필가
#미사#단독#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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