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北에 ‘核묵인’ 잘못된 신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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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포기 불가 알고도 스웨덴 합의
쌀 달라는 北에 “인도적 지원 허용”… 지지율 하락 막으려 위험한 도박
국제사회 북핵공조에 균열 불러

《 북한은 지난달 26∼28일 스웨덴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핵무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북한의 핵 포기 불가 표명에도 북-일 합의를 밀어붙였다. 북한은 또 이 협의에서 쌀과 의약품 지원을 일본에 요구했다.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된 스웨덴 협의 내용의 배경과 영향을 짚어본다. 》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도 일본이 북한에 독자제재 해제를 약속한 것은 한미일 대북공조 전선에 적지 않은 파열음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납치 문제 재조사를 얻어내는 대가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포기 불가를 보도한 일본 마이니치신문조차 일본 정부가 북핵 문제를 그대로 놔둔 채 납치 교섭을 진행한다면 즉각적인 핵 개발 중지를 요구하는 한국, 미국과의 연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4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 측에 핵, 미사일 개발과 지역 긴장을 높이는 군사도발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며 “납치, 핵, 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일본의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일본 엇박자, 한중 견제 다목적 카드

미국은 이미 여러 경로로 일본의 엇박자 행보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는 북-일 합의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지하면서도 “미일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문제를 외교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있다”고 못 박았다. 한국과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도 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뒤 6자회담 재개 조건과 관련해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재확인했다.

그런데도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정권이 북한과 손잡은 것은 임기 내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적 소신 때문만은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북-일 교섭을 동아시아에서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을 견제하는 다목적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아베 총리의 미국 경시 태도도 갑작스러운 북-일 합의의 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아베 총리는 북-일 합의 직전까지 미국에 자세한 내용을 통보하지 않았다.

4월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에 따른 역효과가 경제지표에 본격 반영되는 올 하반기 지지율 하락을 납치 문제 해결 카드로 만회하려 한다는 관측도 있다.

○ 끊이지 않는 북-일 이면합의 의혹

교도통신이 북한의 쌀과 의약품 제공 요청에 일본이 인도적 물자 수송을 용인하는 수준으로 합의를 시도했다고 전한 것을 계기로 북-일 간 이면합의 의혹도 거듭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쌀과 의약품 지원을 요청한 것은 인도적 사안에 상호 성의를 보이자는 특유의 논리를 깔고 있다. 자신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납북자 문제 전면 재조사에 착수하는 만큼 일본도 인도적인 견지로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 미국 등과 협의 없이 단독 지원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일 정부 고위 당국자가 “일본이 북한에 의미 있는 식량 원조를 하는 순간이 되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가만있을 리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핵 개발을 막기 위한 대북제재가 진행 중인데 무원칙한 대북 지원이 이뤄지면 국제사회의 일치된 행동에 틈이 생기게 된다.

일본 언론에서는 일본 정부가 400억 엔(약 4000억 원) 이상의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내 일본인 유골이 약 2만 구로 추정되며 미군 선례에 따라 1구를 찾을 때마다 2만 달러씩을 제공하면 단순 계산해 4억 달러(약 4080억 원)가 된다. 여기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2004년 북한에 일부만 제공하고 보류한 식량과 의약품 지원 금액은 40억 엔 수준으로 관측된다. 당시 일본은 70억 엔 상당의 식량 25만 t과 11억 엔어치의 의약품을 보내기로 했으나 북한과 납치 문제 재조사로 대립하자 중간에 지원을 중단했다.

한편 북-일 정부 간 협상의 일본 측 대표인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이르면 내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의 이해를 구할 예정이라고 지지통신이 4일 보도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조숭호 기자
#아베#북핵공조#스가 요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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