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김일성광장… 남북兩金 이념이 가른 도시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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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개관으로 본 근대건축

서울의 세종로(왼쪽 사진)와 평양 김일성광장 부근은 남과 북의 이념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세종로는 자본주의 도시의 중심부답게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청사와 문화, 상업시설이 혼재돼 있다. 반면 평양은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부청사와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인민을 위한 도시임을 선전하기 위한 도시 설계다. 신경섭 작가·필립 모이저 제공
서울의 세종로(왼쪽 사진)와 평양 김일성광장 부근은 남과 북의 이념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세종로는 자본주의 도시의 중심부답게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청사와 문화, 상업시설이 혼재돼 있다. 반면 평양은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부청사와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인민을 위한 도시임을 선전하기 위한 도시 설계다. 신경섭 작가·필립 모이저 제공
이념은 남북한 도시 풍경을 어떻게 갈라놓았을까.

한반도는 도시와 건축 전문가들에게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서구의 근대 건축문화 수용 과정에서 이념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5일 오후(현지 시간) 개막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은 29개 팀이 참여해 한반도의 근대를 건축으로 돌아보는 전시로 꾸몄다. 주제는 ‘한반도 오감도’. 국가관의 공통 주제가 ‘근대성의 흡수(1914∼2014)’로 정해짐에 따라 남북으로 나뉘어 전개돼온 근대 건축의 역사를 북한과 공동 전시하려 했으나 불발되자 온전한 ‘조감(鳥瞰)’을 못한다는 뜻에서 ‘오감(烏瞰)도’라고 지은 것이다. 이 제목은 건축가 출신 시인 이상의 작품 ‘오감도’에서 따왔다.

○ 양김이 주도한 재건 프로젝트

백남준의 ‘무제’(1988년). 비무장지대(DMZ)를 호랑이 농장으로 만들어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생태천국으로 만들자는 글귀가 나온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백남준의 ‘무제’(1988년). 비무장지대(DMZ)를 호랑이 농장으로 만들어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생태천국으로 만들자는 글귀가 나온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전시는 전후 남북한의 대표 도시인 서울과 평양의 재건을 주도한 건축가로 김수근(1931∼1986)과 김정희(1921∼1975)를 소개한다. 김수근은 일본 유학 후 돌아와 세운상가, 경동교회, 올림픽주경기장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건축물을 설계했다.

모스크바 유학파로 ‘북한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희는 평양 재건 마스터플랜을 설계했고, 평양 도시계획국장을 지내면서 1960년대 재건 사업을 이끌었다. 미국 보스턴의 설계사무소 PRAUD 임동우 소장은 자본주의 도시와 비교되는 평양 도시계획의 특징으로 △도시 내에 생산 기능을 갖추고 △도농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녹지를 도시 내로 끌어들여 도시의 확장을 제한하며 △체제 선전을 위해 북한 전역에 14만 개가 넘는 선전용 기념비와 동상을 건설한 점을 들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도시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서울 세종로와 평양 김일성광장이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부청사와 문화 및 상업 시설이 혼재돼 있는 세종로와 달리 평양은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합청사와 조선혁명박물관, 중앙미술박물관을 배치했다.

안창모 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는 “도시 중심부엔 근로자를 위한 문화시설을 건설하라는 김일성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이는 도시의 주인이 근로자임을 밝혀 사회주의의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 건축으로 체제 경쟁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익숙한 서울보다는 평양의 거리다. 김일성종합대를 비롯해 광복 직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띤다. 소련의 지원으로 도시를 재건하던 시기여서 동유럽 건축 양식이 주류를 이룬 것이다.

1960년대 이후엔 평양대극장이나 옥류관 같은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건축설계는 민족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주체건축론’에 따라 신고전주의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전통 건축 양식이 들어섰다.

흥미로운 점은 남과 북이 독자적인 근대 건축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도 서로를 의식했다는 점이다. 특히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군사적 경쟁이 완화되자 체제 우위 경쟁은 도시와 건축으로 옮겨왔다. 불국사와 법주사의 팔상전을 본떠 만든 국립민속박물관(1975년)은 크고 작은 기와지붕을 얹은 인민대학습당(1982년)과, 전통 한옥의 목조 공법 양식을 차용한 세종문화회관(1978년)은 지붕 부분에 한옥의 자취가 남아 있는 개선문(1982년)과 다른 듯 닮았다.

서울과 평양은 아파트 의존도가 높다는 공통점도 있다. 참여 작가인 스페인 건축가 마르크 브로사 씨와 임동우 소장의 전시 자료는 아파트가 남한에선 중산층의 상징이고, 북한에선 인민을 위한 주거 형태임을 보여준다.

안전을 무시한 속도전도 남과 북이 닮은 걸까. 1957년에는 ‘평양의 속도’라는 표어 아래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의 아파트를 짓는 운동이 전개됐다. 조립식 아파트를 14분 만에 완성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회주의 건축을 연구하는 세르비아 건축가 옐레나 프로코플례비치 씨는 “김정은도 마식령 스키 리조트를 지으면서 ‘마식령 속도’를 주문했다. 기록적인 시간 내에 건설을 마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시스템과 이념, 조직의 경직성으로 북한의 건축적 혁신은 이미지 영역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며 “북한은 여전히 중앙집중화된 배타적인 사회주의 성채이고, 건축은 그것을 충실히 반영하는 존재”라고 평가했다.

베니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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