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하는 흰개미… 강릉 선교장도 위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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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피해 조사 동행

지난달 30일 오전 강원 강릉시에 있는 선교장에서 흰개미 탐지견 보람이가 흰개미 흔적을 찾고 있다. 문화재청 흰개미조사팀은 “후각이 발달한 탐지견들은 흰개미 서식처는 물론이고 지나간 후 체취까지 찾을 수 있다”며 “워낙 훈련을 잘 받고 경험도 풍부해 100% 가까운 적중률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달 30일 오전 강원 강릉시에 있는 선교장에서 흰개미 탐지견 보람이가 흰개미 흔적을 찾고 있다. 문화재청 흰개미조사팀은 “후각이 발달한 탐지견들은 흰개미 서식처는 물론이고 지나간 후 체취까지 찾을 수 있다”며 “워낙 훈련을 잘 받고 경험도 풍부해 100% 가까운 적중률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달 30일 강원 강릉시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제5호). 며칠째 한여름마냥 30도를 훌쩍 넘던 날씨는 이날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전 9시를 갓 지났건만 내리쬐는 땡볕에 살갗이 따가웠다. 하지만 선교장은 99칸 사대부가답게 말끔하게 탁 트여 청량감을 뽐냈다.

전날부터 강릉 지역 문화재를 점검해온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흰개미조사팀은 표정이 심각했다. 흰개미 활동 탐지견인 보람과 보배(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가 연신 목조건물 앞에 멈춰 섰기 때문. 탐지견들은 흰개미 냄새를 맡으면 그 자리에 코를 대고 정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선교장의 18개 동 대부분에선 흰개미 흔적이 감지됐다.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은 7군데나 됐다. 함수율(수분 포함 비율)도 모두 흰개미가 침입하기 적당한 20∼60% 범위 내였다. 조사팀의 서민석 박사는 “진동탐지기상으론 현재 흰개미가 살고 있지 않지만 이미 피해를 입히고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에선 흰개미로 인한 문화재 피해가 2007년 7.6%에서 지난해 11.5%로 증가해 왔다. 흰개미의 북방한계선은 원래 북위 32도였지만 계속 북상해 강원도도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계에선 개마고원(북위 42도) 이남은 모두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전날 점검한 강릉의 대표적 목조문화재인 해운정(海雲亭·보물 제183호)과 오죽헌(烏竹軒·보물 제165호)에서도 흰개미 흔적이 탐지됐다.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됐다.

썩은 나무를 분해해 자연으로 되돌리는 흰개미는 생태계 측면에선 보탬이 되는 익충(益蟲)이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흰개미는 일본 규슈(九州) 흰개미 1종으로 동남아 흰개미에 비해 온순한 성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숲이 줄어들자 ‘이미 죽은 나무인’ 목조문화재에까지 달려들고 있는 것.

문화재청은 연간 13억 원을 들여 훈증과 방충제 도포, 지반 약품 처리, 부비트랩 설치와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흰개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1박 2일 현장을 동행해본 결과 인력이나 예산 부족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사팀은 이틀간 강릉 지역 3군데를 점검하기도 빠듯했다.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목조문화재는 전국에 모두 321건. 서 박사는 “현재 인원으론 1년에 많아야 2, 3개 도의 점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도지정문화재(2019건)는 점검할 엄두도 못 낸다. 탐지견도 2마리뿐. 한 마리당 2억 원 안팎의 훈련 비용이 드는 탐지견은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있는 삼성생명 탐지견센터에서 지원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은 흰개미가 살기에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갖춰져 특히 취약하다. 최근 극심한 피해를 입은 전북 부안군 내소사(전북도 기념물 제78호)의 지장암과 경남 창녕군 술정리 하씨 초가(중요민속자료 제10호)의 한 가옥은 모두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이었다. 정소영 학예연구관은 “미국은 목조건물의 흰개미 피해를 화재와 똑같은 수준으로 취급한다”며 “이제 강원도도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릉=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흰개미#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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