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감독 “시나리오 작업만 6년… 끝이란 각오로 고치고 또 고쳤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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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질주 영화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

김성훈 감독은 한국외국어대 헝가리어과 90학번이다. “전공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 대신 수업시간에 공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영화를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네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김성훈 감독은 한국외국어대 헝가리어과 90학번이다. “전공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 대신 수업시간에 공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영화를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네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약속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계단을 올랐다. 숨을 몰아쉬며 들어간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김성훈 감독(43)은 차분하게 기자를 맞았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눈빛이 빛났다. 삶의 신산을 겪은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덤덤하고도 겸손한 분위기. 그가 매 장면마다 관객을 배반하는 스릴러 ‘끝까지 간다’를 만든 감독이다.

영화는 개봉(지난달 29일) 전이었다. 하지만 시사회 직후 호평이 쏟아졌다. 칸 영화제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유쾌하며 신선한 자극을 주는 영화”라며 ‘끝까지 간다’를 감독주간에 초청했다. 우쭐할 만도 하다.

“평가를 많이 봤어요. 하지만 가스 불을 켜 놓고 집을 나온 듯 불안합니다.”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쫀득한 스릴러 영화. 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거창한 이야기보다 재밌는 이야기만 남기자고 생각했어요. 이게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데뷔작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년)이 망했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서 데뷔작에 실패한 감독에게는 많아야 한두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 ‘끝까지 간다’는 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데뷔작이 2006년 수능 다음 날 개봉했어요. ‘왜 관객이 안 들지? 다음 주에는 잘 들 거야’라고 착각했죠. 내 자식(영화)이 잘난 줄 알았으니까요. 칭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외면하는 걸 보고 안 되는 걸 알았어요.”

이후 그는 망한 영화감독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었다. 처음엔 세상을 원망하고 분노하다가 이윽고 자기반성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일 없이 지낸 지 6개월쯤 됐을 때 직장에 다니던 아내가 임신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담배를 끊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너무 잘 써지는 것 있죠. 궁하면 됩니다.”

‘끝까지 간다’는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귀향’에서 영감을 얻었다. “딸이 살해한 남자의 시체를 주인공이 묻는 장면을 봤어요. 순간 ‘어, 더 깊이 묻어야 하는데’라고 했죠. 자식의 죄를 덮어줄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에서 이선균은 어머니의 관 속에 차로 친 사람의 시신을 넣는다.

그는 2008년부터 ‘끝까지 간다’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수십 번 다듬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에도 스토리에 구멍이 있잖아요. ‘이 정도면 관객이 좋아하겠지’라고 자만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얼굴을 마주 대한 사람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설득할 수 있는데, 만난 적 없는 관객을 어떻게 설득하겠어요. 고치고 또 고쳤죠.”

아내는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됐다.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생활비를 줬고 금융권의 힘도 빌렸단다.

그는 영화가 잘 나온 공을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돌렸다. 인상적인 연기를 한 창민 역의 조진웅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창민은 가장 영화적인 인물인데 완벽하게 구현해 냈어요. 거구이지만 섬세한 배우예요. 연기의 열정이 상대 배우를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살짝 빠질 줄 아는….”

‘끝까지 간다’는 지난달 29일 개봉 이후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이어 일일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다가 2일부터 1위로 올라섰다. 이 영화, 화끈하게 흥행할지는 몰라도 끝까지 갈 것 같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끝까지간다#김성훈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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