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기적의 4분’을 만드는 심폐소생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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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때이다.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계가 할 일이 분명히 있다. 그중에서도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은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살리는 아주 고마운 기술이기에 ‘필수 국민 참여 기술’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일단 심장이 멎으면 100명 중 3, 4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질병관리본부 통계). 심장 정지 후 치료가 1분 늦어질 때마다 살아날 확률은 10%씩 감소한다(대한심폐소생협회 자료). 119와 통화가 된다 해도 평균 8분 후에 구급차가 도착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심장은 ‘4분’ 이상 피가 흐르지 않으면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뇌 역시 뇌손상으로 후유증을 피할 수가 없다.

○ 고마운 장기(臟器) 심장

심장은 수많은 기특한 심성(心性)을 가지고 있다. ①휴무가 없다(연중무휴로 24시간 그저 묵묵히 뛴다). ②아주 작은 보상만 받는다(전신산소 소모량의 5% 배당만 받고 일한다). ③공공성이 뛰어나다(머리, 간, 콩팥 등에 필요한 만큼씩 정확하고 공평하게 배분해 준다). ④(주인이 아무리 쉬라고 명령해도 주인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자동으로 일한다 ⑤주인이 모르게 일한다(심장이 뛰는 걸 주인은 모르면서 산다). ⑥문제가 생기면 즉시 경고등을 켠다(심장 잡음이 들리거나 가슴이 답답해지고 조여들어 기절을 한다). ⑦이웃과 협력 소통할 줄 안다(옆집 허파와는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이다). ⑧자신이 더이상 소임을 할 수 없을 때 주인을 위해 깨끗하게 물러날 줄 안다(판막 대체술, 인조혈관 삽입술, 심장이식술). ⑨주인이 저산소증, 쇼크, 대량출혈로 비상사태에 빠지면 우선순위 결정 매뉴얼이 확실히 정해져 있어 생명과 직결되는 뇌와 심장에 피가 집중 배분되도록 말초 혈관들을 꼭꼭 잠가 버린다(그래서 심장에 이상이 생길 경우 피부로는 피가 가지 않아 창백하고 입술이 파래지고 체온이 떨어지고 식은땀이 나는 걸 볼 수 있다). ⑩양심적(?)이다(그래서 심장에는 털이 안 나는 거 아니가 하는 싱거운 소리(?)를 하나 추가한다).

이렇듯 고마운 심장이지만 잘못되면 대가는 혹독하다. 바로 사망이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죽어갈 때 놓치지 않고 다시 살리는 기술이다. 심장은 한 번 뛸 때마다 ‘소주 한 잔 반’ 정도를 짜내어 전신에 산소와 양분을 공급한다. 심폐소생술은 딱딱한 흉벽을 눌러 심장을 찌그러뜨려 ‘소주 한 잔 반’밖에 안 되는 소량의 피가 심장을 박차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심장은 1분에 몇 번이나 뛸까? 60∼100회면 정상이다. 따라서 심폐소생술을 할 때 소주 한 잔 반의 피를 1분에 100번 가슴을 눌러서 짜내면 충분하다. 다만 흉강 속에 손을 넣어 심장을 직접 주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위치를 제대로 된 힘과 패턴으로 눌러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누르는 가슴의 위치는 명치뼈 아래 중앙이고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세계 누르는 것이 기본요령이지만 누르는 힘과 패턴은 전문가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야 통달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슴을 누르기만 하고 ‘기도 확보’와 ‘인공호흡’은 추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바뀌어 기도 확보용 대롱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입속의 이물질과 접촉하거나 동성의 입술에다 키스를 해야 하는 역겨움과 감염의 위험도 사라졌다. 기술은 더욱 간단해졌고 성공 확률은 더 높아졌다.

○ 뇌에 4분 동안 피 안 가면 손상 시작

일단 주변의 누군가가 답답함을 호소하거나 무호흡, 의식 소실 기미를 보이면 ①큰 소리로 괜찮은지 물어보고 흔들어 깨워보고 숨을 쉬는지 보고 반응이 없다고 생각되면 반듯하게 누인 뒤 ‘즉시’ 심장마사지를 시작한다 ②주변에 사람을 불러 모으고 119에 ‘심장마비’라고 신고해 올 때 제세동기(전기 충격기)를 가지고 오도록 한다 ③가슴 압박을 1분에 100번씩 계속하고 200번마다 숨쉬는지 확인한다.

병원 응급실까지만 갈 수 있도록 도우면 그때부터는 전문소생술과 순환보조장치(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투약, 저체온보존법 등 전문통합치료의 기회를 갖게 된다. 목욕탕에서 갑자기 일어나다가 천장이 빙빙 돌거나 의식을 잠깐 잃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피가 다리로 몰려 잠시 뇌에 피가 가지 않아서 기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장 기능이 정지되는 경우에도 뇌로 피가 가지 않아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뇌에 피가 안 가는 것이 4분 이상 지속되면 그때부터는 뇌 손상이 시작된다.

필자는 신생아의 심장을 멈추고 체온을 섭씨 18도까지 낮추어 조직(뇌·심장 등)을 보호하면서 수술하는 경우가 있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아기는 45∼60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피가 안 가는 상태를 버틸 수 있다. 에너지 대사율을 거의 ‘제로’로 떨어뜨리면 피가 가지 않아도 조직이 부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 체온에서 심장이 정지되어 4분 이상 뇌로 피가 가지 않는다면 뇌 조직은 상하기 시작한다. 돼지의 체온을 18도까지 낮추고 심장을 100분 동안 정지시킨 후 소생시켜 열이 나는 상태(39도)를 만들어 24시간 후 뇌 조직을 보았더니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34도로 유지했더니 손상이 훨씬 적었다. 한마디로 심장과 뇌에 4분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은 누가 저질렀건 직무유기이고 죄악이다.

세 가지만 명심하자. ①개인은 평소 자신의 심장과 뇌의 상태를 체크해 두자.(혹시 관상동맥에 문제가 있다면 니트로글리세린 한두 알 정도는 품고 다니고 동료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자. ②성심성의껏 심폐소생술 교육 훈련을 받자. ③누군가 심장 정지가 의심되면 즉시 심장마사지를 시작하고 119에 신고하고 혼자 하건 둘이 교대로 하건 1분에 100번씩 가슴을 눌러대자. 얼마나 빨리 마사지를 시작했느냐가 생존을 좌우한다.

거듭 말하지만 심장이건 뇌건 피가 안 가도 되는 시간은 고작 4, 5분이다. 당황하고, 겁먹고, 사람 부르고, 119 신고하고, 옷 갈아입고, 택시 부르고, 환자 운반하다가는 이미 때를 놓친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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