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앞둔 안행부, 겉으론 침통 속으론 활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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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임에 조직 줄어들지만… 신설 안전처 등 갈 자리 많아져
“승진 유리한 꽃보직 찾자” 잔칫집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책임을 물어 안전행정부 조직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지만 정작 안행부 공무원들은 승진에 유리한 ‘꽃 보직’을 챙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안행부가 국가안전처 인사혁신처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공개한 지난달 28일 오후 6시경, 안행부 내부전산망 익명게시판인 ‘소곤소곤’에는 ‘빠른 승진 혹은 서울 잔류, 무엇을 택할 것인가’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안행부가 ‘행정자치부’로 축소되고, 세종시에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새 부처가 생기는 과도기에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유리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안행부 직원들은 “신설 조직이 승진은 제일 빠르다” “조직의 사기 진작을 위해 개편 전에 승진인사를 했으면 한다” “이 조직의 마지막 배려는? 근속승진” “주사 대우, 사무관 대우 등 ‘대우’ 자 붙은 직원들 승진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선임이 빨리 승진해야 후임도 희망이 보인다”라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안행부 공무원들이 겉으로는 침통한 분위기이지만, 이번 조직 개편이 승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철밥통’을 지키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무총리실은 대통령 대국민 담화 후속 조치로 진행된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전적으로 안행부에 맡긴 상태다. 국가안전처와 인사혁신처 등 조직이 신설되면 비서실, 감사관실, 총무과 등 지원부서가 각기 새로 생길 수밖에 없고 이 자리들 중 상당수가 안행부 공무원들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 행자부로 바뀌면 지자체 요직 챙길 기회도 늘어 ▼

안행부 관료들이 갈 수 있는 고위직도 늘어난다. 행자부로 조직이 축소되면서 차관 자리가 하나 줄지만 국가안전처의 장관과 차관, 인사혁신처장(차관급)이 생겨 결과적으로 장관과 차관이 한 자리씩 늘어난다.

국가안전처의 경우 장차관에 일반 관료가 대부분인 정무직을 보임하도록 해 소방방재청이나 해양경찰청 출신 인사가 임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약 안행부 등 일반 관료 출신 인사가 국가안전처 차관에 임명될 경우 지휘체계에 혼선이 커지고 현장 대응력도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행부가 행자부로 축소된 뒤 남게 될 지방행정 분야 공무원들은 광역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이나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으로 나가는 길이 더욱 수월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행자부 내 1, 2급 고위간부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면서 지자체 부단체장이나 기획실장 자리로 진출하는 경쟁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광역자치단체의 부지사나 부시장, 기획관리실장 등 최고위직은 중앙정부 고위관료(1, 2급)들의 몫이다. ‘중앙이 지방을 원활히 통제하면서 상호협력하자’는 취지다. 규정상 정부 어느 부처 관료든 이들 보직에 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사권을 갖고 있는 안행부 관료들이 독식해 왔다. 동아일보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의 현직 부단체장과 기획관리실장 명단을 확인한 결과 서울시와 경남도를 제외한 15곳은 안행부 출신이 행정부지사나 행정부시장을 맡고 있다. 기획실장도 안행부 출신이 10곳을 차지했다.

A광역시의 한 고위공무원은 “지역 사정을 거의 모르는 부단체장이라도 안행부가 특정 인사를 내려보낸다고 하면 거절하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지자체들은 재정의 60∼70%를 중앙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고 보조와 지방교부금 배분 권한을 안행부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안행부 공무원들이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느라 다른 중앙부처와의 협업에는 무관심했다”며 “그러다 보니 세월호 참사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제 기능을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방행정 전문 부처인 안행부 출신 부단체장은 중앙과 지방의 원만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다만 안행부만 독식할 경우 지자체와 유착이 생길 수 있어 타 부처나 민간에 적극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neo@donga.com / 인천=황금천 기자 
#안행부#세월호#꽃 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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