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인재-기술력 매력 크지만… 정부 甲질에 진빠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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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업 투자를 유치하라]
50개 해외기업이 꼽은 한국 투자 장단점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연구개발(R&D)센터와 헤드쿼터 설립 지역으로 한국이 나름대로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 규모와 핵심·원천기술 같은 항목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일본을 앞설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 체제가 들어선 뒤 정부 규제가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식재산권 보호, 생활여건 등에서 중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일본은 장기 경기침체, 문화적 폐쇄성, 대지진 등으로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 우수한 인적 자원과 협력의지가 매력

글로벌 기업들은 R&D센터 지역으로서 한국의 장점으로 ‘우수한 인력’(32.9%)과 ‘기술력’(26%)을 가장 많이 꼽았다. 헤드쿼터 지역으로서의 장점도 ‘기술력’(25.9%)과 ‘우수한 인력’(24.1%)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왔다. ‘인력’과 ‘기술력’이 글로벌 기업을 유혹하는 데 가장 확실한 카드란 뜻이다.

미국 화학업체인 다우케미컬은 현재 200명 수준인 경기 화성 전자재료 부문 R&D센터 인력을 조만간 300명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불과 2년 전에 설립된 한국 R&D센터에서 벌써 수십 건의 다양한 기술혁신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권형준 한국다우케미컬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해외 R&D센터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기술혁신이 나온 건 거의 없었던 일이라 본사에서는 한국 투자를 최고 성공 사례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레이첨단소재도 현재 100명 수준인 한국 R&D센터 인력을 5년 안에 200명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회사는 한국 R&D센터에서 진행하는 연구 중 20% 이상을 3∼5년 뒤를 대비한 중·장기 과제로 삼고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협력 가능성’도 한국의 매력이다. 이 항목도 R&D센터와 헤드쿼터로서 한국의 장점으로 모두 꼽혔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과 협력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독일 지멘스는 지난해 10월 에너지 솔루션 사업부문의 아시아지역 헤드쿼터를 한국에 설립했다. 지멘스는 2017년까지 500명 이상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지멘스는 당초 헤드쿼터 설립 지역으로 한국과 중국 등 5개 나라를 검토했다. 한국이 ‘최후의 승자’가 된 배경에는 국내 기업들의 강한 협력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은 “한국 기업이 일본과 중국 기업에 비해 외국 기업과 협력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는 점과 활발한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같은 개방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헤드쿼터 유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조선해양 부문 글로벌 헤드쿼터를 지난해 한국에 설립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도 한국 기업들의 협력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GE 관계자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거래 기업 의견을 수용하고, 대안을 찾는 속도에서 한국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편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 공적 영역은 개선해야

한국이 글로벌 기업의 헤드쿼터와 R&D센터로서 더욱 매력적인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정책 리스크’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력, 기술력, 기업들의 협력 의지 같은 ‘민간 영역’과 달리 ‘정부 영역’에선 개선점이 많다는 뜻이다.

헤드쿼터와 R&D센터 유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는 ‘정책 일관성 확보’(23.8%)와 ‘규제 완화’(21%)가 나왔다. 다음으로는 ‘노사 갈등 해소’(17.5%)가 많았다.

유럽계 A기업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 한국의 기업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규제 완화 속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 2012년 대선을 전후로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부의 편중’, ‘경제 민주화’ 같은 이슈들이 집중적으로 거론되며 반(反)기업 정서가 오히려 강해졌다. 또 의원 입법 등을 통한 규제도 더 강해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A기업 관계자는 “여론 변화로 주요 정책이 바뀌는 건 물론이고 같은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정책에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A기업 본사는 한국을 주요국 중 세금, 환경, 안전 같은 분야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기존 법이 크게 바뀌는 데 이어 강도 높은 규제가 생길 수 있는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독일계 제약 및 화학기업인 머크도 한국의 장점인 빠른 스피드가 정책 부문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하엘 그룬트 한국머크 대표는 “전 정부에서는 녹색성장, 이번 정부에서는 창조경제 그리고 최근에는 안전 등 정책이 갑작스럽게 바뀐다”며 “잦은 정책 변화는 장기적인 R&D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상한 관행’도 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미국계 B기업의 한국인 직원들은 담당 부처의 주요 관계자가 바뀔 때마다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많다. 전임자에게 이미 보냈던 자료를 새 담당자가 다시 보내 달라고 하거나 전임자와 이미 논의했던 내용을 다시 협의하자고 하는 등 귀찮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B기업 관계자는 “본사에서는 이런 모습을 ‘한국만의 특이한 규제’로 평가하고 있다”며 “전략, 기획, 인사, 재무 등이 주 업무인 헤드쿼터 유치에 정부부처의 ‘갑질’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박진우 기자
#글로벌기업#R&D센터#헤드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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