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예 인생 날조… 저명 인권운동가 추한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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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출신 소말리 맘, 뉴스위크에 폭로되자 재단이사장 사퇴

인신매매 집단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다 구출됐다는 이야기로 굴지의 기업에서 후원금을 모으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이 ‘과거사 날조’ 문제 때문에 후원 재단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말리 맘(사진). 그의 자서전(‘다시 찾은 꽃목걸이’·원제 The Road of Lost Innocence)에 따르면 1970년 캄보디아 동부 몬둘키리 지역에서 태어나 부모 없이 자란 그는 12세이던 해 평소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던 친척 손에 프놈펜 사창가로 팔려갔다. 성폭행과 매질, 전기고문과 굶주림을 반복해 겪으며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93년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지옥 탈출’에 성공한 그는 파리에 정착해 프랑스인 인권운동가 피에르 르그로 씨와 결혼했고 2007년 미국 뉴욕에서 ‘소말리맘재단(SMF)’을 설립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불행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인신매매 희생자 지원을 눈물로 호소하는 그의 재단에 앤젤리나 졸리, 힐러리 클린턴 등 저명인사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소말리는 2009년 시사주간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됐고 2012년엔 포스코 청암봉사상 수상자로 뽑혀 한국에 오기도 했다. 그의 명성에 힘입어 SMF는 그동안 매년 수십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모금해 왔으며 에스티로더, 골드만삭스 등 굴지의 기업으로부터도 후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소말리의 인생사는 날조된 것이었다고 뉴스위크가 5월 20일자 커버스토리를 통해 폭로했다.

고향 지인과 학교 교사 등 수십 명을 인터뷰한 결과 소말리는 비교적 평탄한 유년시절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 지인들은 소말리를 “매우 행복하고 명랑한 소녀로 꽤 인기가 많았던 아이”로 기억했다. 또 1987년까지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교사 자격증 시험까지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뉴스위크는 SMF가 보호하고 있는 성매매 희생자들의 경험담도 상당수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구체적 정황이 연이어 보도된 직후 소말리는 현재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재단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SMF 측은 “우리는 매우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관련 보도 내용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SMF는 그동안 1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소녀 인신매매 희생자를 구출했고 6000여 명이 무료 치료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비영리 민간단체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2003년 소말리와 이혼한 전남편 르그로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스토리가 없으면 기부금도 없다”며 일부 단체가 이야기를 꾸며내서라도 후원을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캄보디아#소말리 맘#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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