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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다문화 한국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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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다문화 한국 10년

동아일보입력 2014-05-24 03:00수정 2014-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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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이웃’ 125만명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이제 한국에서는 가족도 국경이 없는 시대가 됐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딸 조안나(가운데)를 입양한 박혁재(왼쪽), 안진서 씨(오른쪽) 부부와 박 씨 부부가 낳은 아이들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금은 한국말 잘하죠. 목소리만 들으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인 줄 알 거예요.”

주부 안진서 씨(40)는 방글라데시에서 입양한 딸 박조안나 양(15)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이 ‘마음으로 낳은 딸’은 안 씨의 식성과 말투, 생각까지 빼닮아가며 쑥쑥 크고 있다.

안 씨는 남편 박혁재 씨(40)와 2005년 결혼했다. 이들은 결혼할 때부터 “앞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고, 아이도 입양하자”고 약속했다. 부부는 결혼 후 약 2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입양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 아이를 입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조안나라는 아이를 만났는데 너무 예뻐서 딸 삼고 싶더라”란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방글라데시의 교육환경이 열악해 조안나도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부는 입양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안 씨가 임신을 하게 됐다.

안 씨는 임신 6개월이었던 2008년 12월 조안나를 만나러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당시 조안나는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고, 조안나 부모와는 간단한 영어나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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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 부부는 조안나를 입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쌍둥이 딸들(5)을 낳았다. 동생들이 태어나자, 조안나는 엄마, 아빠에게 매일같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기 시작했다. 자신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박 씨는 회사에 다녀오면 큰딸과 먼저 놀아준 뒤 쌍둥이 딸들을 돌봤다.

사람들은 이들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졌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이런 용어는 생소했다.

국내에서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는 결혼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생겨났다. 국제결혼가정의 아이들이 ‘혼혈’이라고 불렸던 게 계기였다. 2004년 4월, 시민단체인 ‘건강가정시민연대’는 차별적인 용어를 고치자며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결혼 자녀를 ‘다문화가정 2세’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용어는 빠르게 전파됐고, ‘다문화’란 수식어가 붙은 단어들도 등장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엔 결혼이민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 124만7834명(3월 기준)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나는 러 출신, 아내는 일본… 한국이 좋아 뿌리 내렸죠”

“회사서 첫 외국인 정규직 되고… 변호사 공부 학비도 지원받아
취직-사업… 한국은 기회의 땅, 나 같은 이민자 계속 늘어날 것”


지난해 5월 21일 세계인의 날(5월 20일)을 맞아 서울 숭실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전통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원들. 세계인의 날은 국민과 외국인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08년 제정됐다. 올해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기념식과 문화행사를 열지 않았다. 한국이주여성연합회 제공
“영화에서 보면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그곳을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생각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이 ‘성공이 이뤄지는 나라, 성공을 끌어당기는 나라’입니다.”

러시아 출신인 드미트리 레투놉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41)는 “한국에 와서 학교도 졸업했고, 좋은 곳에 취직해 아내도 만났고, 아이들도 낳았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모든 인생이 이뤄진 거나 마찬가지”라며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으로 귀화한 사람은 13만5810명. 레투놉 변호사는 올해 2월에 귀화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인 아내(38)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아내는 일본 국적, 두 아이는 러시아 국적이다. 아이들은 주로 아빠와는 러시아어, 엄마와는 일본어, 유치원에선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한다.

성공이 이루어지는 나라

레투놉 변호사는 1998년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입국했다. 한국 대학에서 무료로 한국어 연수를 시켜 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3개월간 연수를 받으러 온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계속 살 의향은 없었다. 하지만 연수가 끝날 무렵, 금융위기로 러시아 경제상황이 좋지 않자 돌아가지 않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이때부터 한국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석사 학위를 딴 후 2004년부터 LG건설(현 GS건설)에서 일했고, 첫 외국인 출신 정규직 직원이 됐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 직원들은 대개 계약직이었던 때였다. 그는 “정말 감동을 받았고 자랑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레투놉 변호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2007년 법무법인 율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러시아와 관련해 마케팅과 시장조사 등 각종 프로젝트 업무를 맡았다. 당시 그의 직책은 전문위원. 당시만 해도 변호사는 아니었다.

회사에선 “변호사가 되는 게 어떠냐”며 관련 학비 일체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의 지원으로 러시아의 대학원에 진학했고, 변호사 과정을 마쳤다. 러시아 변호사로 변신한 뒤부터는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에 관한 사건 변호와 자문 등을 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직장문화는 녹록지 않았다. 러시아와는 달리 연차를 14일밖에 쓸 수 없고, 길게 붙여 쓰기보다는 조금씩 나눠 써야 했다. 그는 “러시아의 경우 기본으로 연차 18일을 주고, 근무연수가 쌓일수록 연차가 계속 늘어난다”며 “러시아에 계신 아버지는 퇴직하기 직전 연차가 60일이나 됐다”고 말했다.

레투놉 변호사가 한국의 직장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당연히 있었고, 적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젊을 때 여러 일도 해보고 싶고 도전도 해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한국에 이민자 많아질 것”

레투놉 변호사가 일하는 법무법인에도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 페루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자신처럼 한국에서 취직해 일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국과 러시아만 보더라도 앞으로 가스, 석유 등 각종 경제교류가 늘어날 거예요. 미국이나 유럽연합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에서도 전망이 보이면 외국인을 더 많이 채용하겠죠”

그는 “이민자들이 한국어만 잘 배운다면 의사표현도 할 수 있고, 각종 오해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며 언어 구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언어만 잘한다면 모스크바에서 독일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 러시아 속담도 소개했다.

낯선 땅에서 생활한 지 어언 16년. 향수병으로 고생한 적은 없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한국 부모들이 아이를 비닐하우스처럼 따뜻한 환경에서 키우기 때문”이라며 말했다.

“많은 한국 부모가 애들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설거지며 청소며 다 해줍니다. 하지만 아이 성격이 발전하려면 혼자서 뭔가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교육이 핵심입니다. 외국인과 성격이 안 맞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게 배짱을 길러줘야 해요.”

그의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에는 인도 호주 이란 일본 미국 등에서 온 부모를 둔 다양한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레투놉 변호사는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다양한 문화와 친숙해지고,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이민자들

많은 사람이 ‘다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동남아 출신의 결혼이민자를 떠올리지만 다문화사회로 진입해가는 한국에는 다양한 이민자가 정착해 있다. 파키스탄 출신 무다사르 알리 대표이사(왼쪽 사진)와 러시아 출신 드미트리 레투놉 변호사도 그 구성원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일자리도 만들고, 경제에도 당당히 기여하는 이민자도 많다. 2006년 이민 온 파키스탄 출신 무다사르 알리 ACM 대표이사(31)는 인천에서 연간 30억∼40억 원 규모의 중장비 수출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장비를 사들인 뒤 파키스탄 등 외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이다. 한국인 직원도 3명을 고용했다.

알리 대표이사는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정보기술(IT)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그의 형(44)은 한국에서 중장비 수출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 한국의 건설회사들이 파키스탄의 건물과 도로 공사를 도맡아 하면서, 한국 중장비도 인기가 높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5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한 뒤 기업투자(D-8) 비자를 받고 들어와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영어로 거래를 했다. 장비를 사면 서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수출할 때 세금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등을 일일이 한국인들에게 문의했다. 그는 “이곳에서 사업도 잘되고 있고 한국이 너무 좋아서 평생 살고 싶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법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알리 대표이사는 경기 부천시의 경기글로벌센터에 찾아가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민자에게 한국어와 경제 사회 법률 등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2년간 매주 센터를 찾아가 공부했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됐다.

그는 한국은 이민을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엔 사업 아이템이 엄청 많아요. 중장비뿐만 아니라 중고차, 휴대전화, 옷, 화장품 등 무궁무진하죠. 한국에 파키스탄 기업가 모임이 있는데, 회원이 230명이나 됩니다.”  

▼ 전문가 “다문화=결혼이민 인식… 또 다른 편견 우려” ▼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이민자나 귀화자가 포함된 가족을 ‘다문화(多文化)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는 문화 다양성을 뜻하는 말이지 이민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이민자 가족을 다문화가족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번거롭더라도 용어는 정확하게 써야 하는데, 잘못된 용어가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들도 해당 명칭이 거북하긴 마찬가지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빠도 한국 사람인 데다 모국어도 한국어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며 “제발 다문화 학생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자녀와 외국에서 태어난 뒤 한국에 온 외국인 아이를 한데 묶어 ‘다문화 학생’으로 분류한다.

잘못된 명칭은 사소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본래 문화 다양성을 뜻했던 다문화라는 말이 특정 가족 형태를 지칭하는 데 쓰이면서, 어느새 주로 아시아계 결혼이민자의 가족을 비하하는 수식어로 변질돼왔기 때문이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소수집단에 자꾸 어떤 명칭을 붙여 범주화하면 고정관념과 편견이 생기고, 그게 결국 차별행위로 이어진다”며 “다문화가족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민가족을 특정 단어로 미화해 부르기보다는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게 좋다고 말한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현상 그 자체를 말해주는 ‘이민자’ ‘이주민가족’ ‘이주배경 자녀’와 같은 용어로 불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보통 ‘이민자’라고 하면 영주권자나 귀화자를 떠올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3개월 이상, 유엔에서는 1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을 이민자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이민자들을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족’으로 부르면서 문제도 잇따르고 있다. 안전행정부에서는 매년 발표하는 ‘외국인주민현황 통계’에서 귀화한 결혼이민자와 이들의 한국인 자녀까지 외국인 주민으로 집계하고 있다. 설 교수는 “외국인은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데, 귀화자와 결혼이민자의 자녀까지 외국인 주민으로 부르는 건 명백한 오류”라며 “자국민을 외국인으로 부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통계청은 다문화가족의 출생자와 사망자 통계를 ‘다문화 출생’과 ‘다문화 사망’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료의 의미가 다문화시대의 시작과 종말인 줄 알았다”며 “다문화가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출생하고 사망하느냐”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정부가 다문화라는 이름을 쓰는 건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 때문이다. 이 법은 결혼이민자나 귀화자의 가족을 지원하는 법률로, 이들이 국적을 취득했건 안 했건 내국인과는 별도의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아이라도 엄마가 외국인 출신이면 영원히 내국인 자녀들과는 구분된 ‘다문화가족’으로 불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셈이다.

최윤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혼이민자가 국적을 취득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해 가족과 생활하면 다른 가족과 동일한 법체계로 지원과 규율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 장기적으로 차별, 역차별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민의 정착 지원과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과 다문화가족지원법, 출입국관리법 등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진 법들을 하나로 통폐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아울러 법에서 다문화가족이라는 모호하고 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다문화 아이들 따로 국어교육, 이방인 취급받는 느낌” ▼


“학교 다니면 별 차이도 없는데…다문화라 공부 못할거라고 인식해
아이에겐 한국인 정체성 심어주고, 엄마에겐 일자리 주는 정책 폈으면”

진정으로 이민자를 위한 정책 필요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데에 엄마아빠의 국적이나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 다문화라는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다. 친구는 친구일 뿐이다. 서울 구로구 지구촌학교에 다양한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장식물이 붙어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안전행정부가 이민 배경을 지닌 주민의 현황을 정리한 ‘외국인주민통계’(2013년)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귀화자나 외국인은 144만5631명. 귀화자를 빼면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은 근로자(52만906명), 동포(18만7616명), 결혼이민자(14만7591명), 유학생(8만3484명) 순으로 많다. 번듯한 곳에서 일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차별이나 편견, 미흡한 제도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는 이주민도 상당수다.

이민자들이 그리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39)은 “정부가 정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0년 정식으로 출범한 이주여성연합회는 온·오프라인을 포함해 회원이 2000여 명이다.

중국 한족(漢族) 출신인 왕 회장은 2002년 한국에 처음 왔다. 지인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고, 2003년 결혼했다. 한국에 정착한 뒤엔 아들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이민자들이 그리는 세상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낳은 자녀를 이방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를 대상으로 한 다문화교육에는 찬성하지만 다문화가정 자녀만 따로 떼어다가 별도의 보충교육을 시키는 것엔 반대한다. 당사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부 정책 중에서는 다문화가정에 의도치 않은 ‘주홍글씨’를 새기는 프로그램이 많다.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언어 발달을 진단해주고, 한국어 교육을 해주는 정책 등이 그렇다.

“누구나 공부를 못할 수 있는데, 왜 다문화가정이라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다문화가정 아이만 따로 한국어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이상합니다. 영유아 때는 외국 출신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 못할 수 있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별 차이가 안 납니다.”

정부가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엄마(아빠)나라 언어습득 지원을 위한 언어영재교실’도 마찬가지다. 왕 회장은 “엄마나라 언어를 가르쳐주는 건 엄마 몫이지, 국가에서 해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 사람인지 다른 나라 사람인지 혼란을 느끼면서 오히려 안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이주여성 모임에서 합창단 활동을 할 때도 엄마들은 출신국 의상을 입어도 아이들은 한복을 입힌다. 명절에 중국 친정을 방문할 때도 한복을 입힌다.

“아이들이 한국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주고 싶어요. 당연히 군대도 보낼 겁니다. 정부도 제발 아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줬으면 합니다.”

탄탄한 한국어 교육 절실

결혼이민자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주여성들은 정부가 아무리 복지 지원을 해줘도, 당사자들이 계속 복지 혜택에만 의존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왕 회장은 다문화가정의 미래에 대해 “애들이 중고교에 들어가면 돈은 더 많이 들어가고, 남편은 나이가 많이 들수록 경제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때도 계속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사나요? 아니잖아요. 이주여성들의 나이가 20, 30대로 젊을 때 한국어와 기술을 제대로 배워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왕 회장도 처음부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건 아니었다. 그는 결혼 전 중국 칭다오의 한국 회사에서 일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1년 반 정도 공부하며 실력이 늘었고, 지금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왕 회장은 한국에서 이주여성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이주여성들을 무수히 만나왔다. 상당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몇 년 동안 다녀도 한국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무료니까 그래요. 제가 언어교육원에 다닐 때는 싼 금액이라도 학비를 내니까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무료니까 오늘은 가고 내일은 안 가는 식으로 다니는 사람이 많더군요. 예산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왕 회장은 언어교육원에서 교수급 강사나 박사과정을 마친 연구진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에 비해 강사의 전문성이 훨씬 떨어졌고, 교육도 느슨하게 하곤 했다. 그는 “정부가 한국어 교육을 좀 더 전문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며 “차라리 한국어 교육 예산이 대학 어학당으로 가면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민자 늘어날 듯

한국에서 다문화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민자라고 하면 ‘외국인 며느리’(결혼이주여성)를 떠올리는 시대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올해 4월부터 국제결혼 비자심사를 강화해 결혼이민자가 줄어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부부간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한국인 배우자가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안 될 경우 결혼이민비자 발급이 제한된다.

정부는 의사소통도 안 되는 남녀가 단기간에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후 각종 사회문제가 생기자 이를 예방하기 위해 비자 발급 문턱을 높였다. 결혼 당사자 간 혼인의 진정성과 가족부양 능력을 보다 엄격히 심사해 비자를 주는 것이다. 이 조치가 시행된 후 중개업체를 통한 속성결혼이 줄어들면서, 과거에 비해 결혼이민비자 신청 건수도 대폭 줄고 있다.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이민의 양상은 유학, 취업, 사업 등으로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다문화가정’을 넘어 ‘이민자’로 시야를 넓혀야 하는 이유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다문화가족 지원정책 자체가 이민정책은 아니다”라며 “이민자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는 이민정책 중에서 사회통합 정책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차용호 법무부 이민통합과장은 “이민정책은 국가가 어떤 외국인을 어떻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인구 경제 외교 국방 문화 인권 복지 등에 관한 정책과 국민정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이민정책을 논의하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시민권과 이주’라는 영문서적을 공동 집필한 이종희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방송토론팀장(사회학 박사)은 “한국에 이민청 같은 총괄기구가 없다 보니 국가적인 차원의 큰 틀에서 정책을 추진하거나 장기적인 로드맵을 설정하는 데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국가적으로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다문화가정#드미트리 레투놉#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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