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진철]국가위기대응시스템 제대로 작동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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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철 경북대 사회대학장 한국위기관리학회장
노진철 경북대 사회대학장 한국위기관리학회장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부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개명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했지만 막상 닥친 대형 참사에서 정부는 무력했다. 적극 위기에 대응한다며 부처마다 대책본부를 만든 게 오히려 정보의 혼선을 빚으면서 컨트롤타워가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현장 지휘자가 계속 바뀌거나 혼재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되는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가 위기에 적극 대응하려는 정부의 ‘선의’가 긴급 구조와 재난 수습을 지연시키는 ‘악의’로 작용한 것이다.

정부가 위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국가 위기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은 과연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 제2, 제3의 대형 참사가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은 더 강력한 위기대응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지면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국가위기대응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에 처한 것은 관료주의 행정에 따른 결과다. 현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안행부의 제2차관을 비롯한 안전관리본부의 직원들이 맡도록 했다. 그들은 유능한 행정 관료일지는 모르지만 해양사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위기대응 실무매뉴얼도 숙지하지 못한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었다. 여기에 순환보직 관행은 재난관련 전문가가 육성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고위 관료로 이루어진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옥상옥’의 컨트롤타워 강화보다 사고지역 관할 현장 지휘자에게 긴급구조와 재난수습에 대한 전권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2001년 미국 뉴욕 9·11테러 때 현장 지휘자는 세계무역센터 관할 소방서장이었다. 뉴욕시장은 모든 지원 업무를 조정하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 2005년 영국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 때의 현장 지휘부는 런던 경시청이었다. 우리는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회의 때 중앙테이블을 실무자들에게 내어주고 미국 대통령은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위기대응 매뉴얼 수준 자체는 낮지 않다. 전문가들이 각 선진국의 제도들을 참고해 우리 사회에 적합한 요소들을 추려내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매뉴얼이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란 것이다. 3000개가 넘는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지만 재난은 일어났고, 국가는 위기대응에 실패했다.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 직원이던 하인리히 씨는 5000여 건의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 대 29 대 300 법칙’을 발견했다. 사소한 징후 300건을 소홀히 한 결과가 경미한 사고 29건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해결책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연안 여객선의 경우 면허 없는 선원이 키를 잡거나, 적재 화물을 결박하지 않고 운항하며, 비상채널 대신 일반채널로 연락을 하는 식의 안전규정 위반 관행이 일상적이었다. 세월호의 경우 사고 발생 2주 전부터 이상 징후들이 보고됐지만 모두 묵살되었다. 안갯속 무리한 출항, 화물의 초과선적, 입사 4개월 차 3등 항해사의 운행 미숙, 과도한 방향 선회, 고장 난 조타기 등 불법과 규정위반이 판쳤다.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돌보지 않은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한 탈출 행동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국가의 감시와 통제가 지금보다 더 강화된다면 사고를 예방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감독관청인 해양수산부 및 해양경찰청과 감독대상인 해운업체와의 유착관계가 존재하는 한 국가의 감시와 통제는 큰 의미가 없다.

정부 부처 고위 관료들이 정년퇴직 후 산하 기관 및 협회 등으로 이동하는 관행이 생겨난 것은 오랜 관료주의에 따른 부작용이다. 감독대상인 산하 기관과 협회는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고위 관료들과 미래 일자리를 약속하는 공모를 하고, 그 대가로 규제가 느슨해지는 ‘회피 행동’이 허용된 것이다. 그 결과 매뉴얼은 선진국 수준의 국가위기대응시스템이지만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대학장 한국위기관리학회장
#세월호 침몰#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위기 대응#컨트롤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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