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사람 싸움장 된 청도 소싸움경기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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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개장 약속 어기고 무기연기
투자자-시행사, 사용료 놓고 대립 탓
관광객 발길 끊기자 지역민들 발동동

“소싸움은 안 하고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답답하죠.”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서 싸움소 10마리를 키우는 이모 씨(52)는 5일 상설소싸움경기장 개장이 기약 없이 연기된다는 소식에 한숨부터 쉬었다. 개장에 맞춰 1년 동안 준비했지만 막연한 상황이다. 싸움소 영양식을 줄이거나 훈련을 중단할 수도 없다. 벌써 500만 원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 이 씨는 “관련 기관들이 지역민과 관광객은 뒷전인 채 다투는 꼴이 한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도군 화양읍 소싸움경기장이 지난달 15일 개장 약속을 어긴 채 보름이 넘도록 닫혀 있다. 관람석 1만2000여 석은 텅 비었다. 올해 싸움소 200여 마리가 출전해 매주 토, 일요일 10경기씩 12월까지 900경기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중단된 상태다. 주말 소싸움을 보려고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헛걸음만 하고 있다.

소싸움경기장 개장 연기는 민간 투자자인 ㈜한국우사회(청도 소재)와 사업 시행사인 청도공영사업공사가 경기장 연간 사용료를 두고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사회는 경기장을 짓고 청도군에 기부하면서 2011년부터 31년 9개월간 무상 사용권이 있으며 공영사업공사는 올해부터 경기장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우사회는 투자비 회수를 위해 84억 원을 주장하는 반면 공영사업공사는 14억∼18억 원이 적정 수준이라며 맞서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협상을 하고 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우사회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 15명의 연간 인건비 6억9500만 원, 공영사업공사에 빌린 40여억 원의 상환 유예도 추가 요구한 상태다. 우사회 관계자는 “2000년 경기장 착공 후 개장까지 11년이 걸리면서 은행 이자 등 갚아야 할 돈이 130여억 원”이라며 “지금까지 3년여 동안 양보했으니 이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도공영사업공사 관계자는 “우사회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수준”이라며 “2, 3년 후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다시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첨예한 대립 때문에 올해 소싸움 경기는 안 열리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지역민들은 속이 탄다. 소싸움경기장은 지난해 관중 100만 명 돌파와 매출액 195억 원을 기록하는 등 상승 추세여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도투우협회에 따르면 청도에는 회원 70여 명이 싸움소 15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싸움소 한 마리에 1500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인데 경기를 못해서 육우로 팔면 절반도 건지지 못해 손해가 매우 크다. 하루빨리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장 인근 와인터널과 용암온천, 프로방스(가족테마공원) 같은 관광시설의 매출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음식점 주인은 “주말마다 승용차와 버스 행렬이 이어졌는데 이번 사태가 길어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10일 소싸움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인 청도소싸움축제도 개최가 불투명하다. 지난해 4월 열린 이 축제에는 관광객 37만여 명이 찾았다. 청도군 관계자는 “소싸움축제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며 “청도 하면 소싸움인데 이번 일로 청도 이미지가 나빠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청도#소싸움경기장#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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