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심층 포커스]‘세계경제 대통령실’ 美 연준 파워 해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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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성명 한줄에 지구촌 경제온도 오르락내리락

지난달 22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68)이 취임 후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자리였다. 새해 벽두부터 급격한 자본유출로 홍역을 치른 신흥국들은 새 얼굴의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옐런 의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냉정했다. 그는 “신흥국 위기가 미국의 통화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축소)으로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신흥국의 리더 격인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선진국이 신흥국 위기를 방치하면 새로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맞섰지만 먹히지 않았다.

옐런 의장의 발언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유지돼 온 선진국과 신흥국 간 국제통화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각국 중앙은행은 최근 6년간 경기 부양을 최우선으로 하는 통화정책을 밀고 나가며 공동전선을 펴 왔지만, 이제 신흥국들은 그런 공조에 대한 기대를 접고 독자생존의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 같은 지각 변동의 근원지에 옐런이 서 있다. 시드니 G20 회의에서 선진국 재무장관들은 신흥국들에 “취약한 경제구조 개혁부터 먼저 하라”며 옐런을 지원했다.

지구상 모든 이의 호주머니와 월급통장을 쥐락펴락하는, 그래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가 연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세계인의 경제생활에서 연준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연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최초의 여성 수장 옐런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함 ‘연준호(號)’를 안전하게 이끌 수 있을까.
연준 파워를 키운 거물 의장들의 회동

옐런 의장을 비롯해 그의 전임자인 폴 볼커(87) 12대 의장, 앨런 그린스펀(88) 13대 의장, 벤 버냉키 14대 의장(61)은 공교롭게도 모두 유대인 출신이다.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수도 워싱턴의 콘스티튜션애버뉴 20에 위치한 연준 워싱턴 청사에 이들이 모였다. 연준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 자리였다. 옐런을 제외한 세 사람은 이미 세계 경제사에 남다른 족적을 남긴 데다 ‘연준 파워’를 키워 온 인물이다.

선임인 볼커 전 의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고 “물가 상승이 큰 골치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취임 당시 11%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를 2년 만에 20%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뒀다. 그의 물가안정 의지 덕택에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1983년 3.2%까지 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 효과가 나타나기 전인 1980년 대선을 치른 지미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배했다. 카터의 보좌진은 “볼커가 인플레와 카터 정권의 숨통을 같이 끊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볼커는 훗날 장기 호황의 토대를 놓은 인물로 재평가받았다.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투자와 대형화에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고수익을 위해 금융회사가 직접 채권 주식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볼커 룰’도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낚시로 소일하던 그를 경제 자문으로 모셨다.

연준 역사상 최고의 스타 의장으로 꼽혔던 그린스펀은 미국 주가가 하루 만에 23% 급락한 1987년 10월 19일의 ‘블랙 먼데이’를 떠올렸다. 당시 초짜 의장이었던 그는 “겉으론 태연했지만 속으론 벌벌 떨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랙 먼데이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로 그는 역대 연준 의장 중 두 번째로 긴 18년 동안 집권했다.

그린스펀은 할리우드 배우보다 더한 유명세를 치렀다. 그의 가방과 구두, 즐겨 찾는 식당이 유명해졌고 NBC방송의 스타 기자로 1997년 그와 결혼한 아내 앤드리아 미첼과의 청혼문 등 각종 가십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는 금리를 결정할 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2명의 만장일치를 요구했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임원을 좌시하지 않았다. 또 연준과 금융시장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한 뒤 알 듯 말 듯한 단어를 사용해 시장을 움직였다. 금융시장에선 그의 어법을 ‘페드스피크(Fedspeak)’라 불렀다. 그의 말을 낱낱이 분석해 향후 경제 전망 및 금리정책을 가늠하는 기자와 경제 분석가들을 일컫는 ‘연준 관찰자(Fed watcher)’란 용어도 이때 생겼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은 “그린스펀이 갑자기 죽으면 선글라스를 씌운 그의 시체를 집무실에 두고 죽음을 알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경제에 미칠 충격이 적다”고 말했다. 연준 의장에게 붙는 ‘세계 경제 대통령’이란 수식어는 그로부터 유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대부자가 세계의 최종 대부자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린스펀의 명성에 금이 갔다. 지나친 저금리가 미국의 부동산 거품을 키워 서브프라임과 금융위기로 이어졌다는 비난이 거셌다. 그는 2010년 “40년간 믿어 온 경제이론에 허점이 있었다”며 실수를 인정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의 뒤를 이은 버냉키 의장은 ‘대공황 전문가’였다. 취임 당시에는 ‘싸구려 옷과 촌스러운 머리 모양의 정치 문외한’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부부 동반으로 각종 파티를 누빈 그린스펀과 달리 버냉키는 중저가 옷만 입고 다녔고 정계와의 인맥도 부족했다. 그는 연준 의장 최초로 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 통화정책의 선제적 안내(포워드 가이던스), 실업률 목표치 등 투명성 강화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버냉키는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 때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이를 묵살해 금융위기를 방조했다는 비판에서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초기 대응은 늦었지만 버냉키의 진가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발휘됐다. 그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도 없는 제로(0)까지 낮췄음에도 소비 및 투자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3조 달러가 넘는 돈을 풀어 세계 경제의 파국을 막았다.

금융위기는 연준에 새로운 과제와 더 큰 힘을 동시에 안겼다. 연준이 각국 중앙은행과의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도 금융위기가 남긴 유산이다. 연준이 아무리 막강해도 혼자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위기의 강도와 파급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정점인 2008∼2009년 2년간 각국 중앙은행이 맺은 통화스와프 라인은 무려 27개였다. 국가 간 통화스와프란 금융위기 같은 비상사태 때 자국 통화와 다른 나라의 통화를 상호교환(스와프·swap)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계약이다.

연준은 리먼 파산 후 3일 만인 2008년 9월 18일 유럽 영국 캐나다 일본 스위스 중앙은행과 18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10월 29일에는 한국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도 스와프 라인에 포함됐다.

닐 어윈 뉴욕타임스 수석경제기자는 “연이은 통화스와프로 연준이 미국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금융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맞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중앙은행 고유의 임무를 일컫는 용어)에서 세계의 최종 대부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꺼지지 않는 ‘연준 공화국’ 논쟁

막대한 돈을 찍어 ‘은행의 은행’ 역할을 하며 금융위기를 수습한 버냉키의 결정은 연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논쟁을 격화시켰다.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 아닌 임명직 관료에 불과한 연준 의장이 자체 재량으로 막대한 돈을 뿌리는 일이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의회 승인도 거치지 않고 3조 달러를 독자적으로 찍어낸 연준의 권한이 어디서 나오는지, 리먼의 파산은 방치하고 대형 보험사 AIG는 살린 연준의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쟁도 뜨겁다. 데이비드 웨슬 WSJ 경제 에디터는 “대통령마저 자기가 뽑은 연준 의장이 연출하는 연극의 관객으로 남았다”고 비꼬았다.

경제에 관해서는 대통령조차 최종 결정권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금융위기 당시 미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장이었던 바니 프랭크는 “국민이 뽑지 않은 사람이 독자적 판단으로 수천억 달러를 지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의원도 “연준의 비대화와 권한 확대는 자동차 사고를 낸 아들에게 부모가 더 크고 빠른 자동차를 사주는 격”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는 연준을 믿는다(In Fed We Trust)

세계 경제는 1년에 8번, 화요일 오후 2시 15분에 마술에 걸린다. 연준이 FOMC를 마치고 회의 내용을 요약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순간이다. 한 장도 채 안 되는 짧은 성명서에는 연준이 시행하는 통화정책의 방향과 이유가 담겨 있다. 수많은 사람이 이 성명서의 단어 하나, 쉼표 하나까지 음미하면서 그 속내를 파악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G20을 통해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한 옐런 의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초의 여성 의장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단 옐런은 올 1월 초 상원 인준에서 찬성 56표, 반대 26표를 얻었다. 옐런에 대한 찬성표와 반대표 격차 30표는 역대 의장 중 가장 적은 것이다. 연준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기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의회와 국민을 안심시키는 게 옐런의 첫 번째 과제다.

양적완화의 혜택이 산업계와 일반인, 즉 실물경제(Main street)가 아니라 월가(Wall street)의 몇몇 대형 금융회사와 저금리로 국채 발행 비용을 절감한 각국 정부에만 돌아갔다는 비판도 잠재워야 한다. 미국 경제의 난제인 실업률 하락을 이끌어내고 테이퍼링에 반발하는 신흥국의 반발을 무마해야 하는 중책도 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에 필요한 고도의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옐런이 ‘부의장 상왕정치’의 위험을 감수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 등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스탠리 피셔를 부의장에 영입한 목적이 여기에 있다.

미 달러화 지폐에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는 달러의 가치를 보장하는 미국 정부를 신만큼 신뢰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정부기관 중 달러를 발행하는 연준을 믿는다는 말이 된다. 웨슬 WSJ 에디터는 “경기 호황 때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미미하지만 불황에는 그야말로 신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달러화에 있는 문구를 ‘우리는 연준을 믿는다(In Fed We Trust)’로 바꾸어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정민 dew@donga.com / 뉴욕=박현진 특파원
#재닛 옐런#앨런 그린스펀#벤 버냉키#연방준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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