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우생순’ 뒤집어 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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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말 많고 탈 많았던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이 끝났다. 국민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빙속 여제’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에 환호했고 ‘피겨 여왕’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점수가 발표된 뒤에는 화가 치밀어 새벽잠을 포기했다.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빙판에 두 번이나 넘어지고도 끝까지 완주해 동메달을 따낸 박승희의 투혼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남의 잔치는 끝났다. 이제 바통은 대한민국에 넘어왔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꼭 4년 남았다. 경기장 신축 등 인프라 구축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정상급 경기력을 갖춘 선수 육성이 걱정이다. 안방에서 치르는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들러리가 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메달권 선수’를 키우는 데 4년은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이를 의식한 듯 25일 귀국한 한국선수단과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은 인천공항 보고회에서 “소치 올림픽에서 컬링과 설상, 썰매 종목의 희망을 봤다. 정부와 체육계가 체계적으로 우수 선수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명승부를 펼쳤던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당시 한국은 2차 연장전까지 19차례나 동점을 이루며 덴마크와 혈투를 벌였지만 승부던지기에서 패해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다. 이후 국내 언론은 한국 여자 핸드볼팀을 지칭할 때 관용적으로 ‘우생순’을 쓰고 있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은 ‘빙판의 우생순’으로 표현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우생순’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둬 왔지만 정작 국내에서 핸드볼은 ‘한데볼’이라 불릴 정도로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4년 내내 무관심하다가 올림픽 때만 애정을 표현한다. 한국 여자 컬링이 소치 올림픽 때 받은 국민적 관심이 혹시 핸드볼과 마찬가지로 ‘4년 주기 반짝 인기’는 아닐까. 눈썹 위까지 올라가 있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감안할 때 지나친 기우만은 아닐 듯싶다.

지금 겨울체전(2월 26일∼3월 1일)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아는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여름체전도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됐다. 축구는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가 아니면 성에 안 찬다. 이미 원정 16강을 이뤘으니 국내 축구팬의 2014 브라질 월드컵 기대치는 원정 8강으로 상향 조정돼 있을 것이다.

근대올림픽의 이상(理想)은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완성과 국제평화의 증진이다. 하지만 점차 국력 과시의 전시장으로 변해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마저 훼손하고 있다. 급기야 소치 올림픽은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올림픽이었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푸틴 케이스’는 극단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우리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이 남의 잔치가 되도록 방관할 수는 없다. 이는 결코 국수주의가 아니다. 국가적 자긍심과 국민적 자존감이 걸린 문제다. 어차피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느냐 여부도 99%는 선수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수가 완성되려면 나머지 1%의 자양분(사랑과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국민과 팬들로부터 나온다.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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