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중경]스스로 지킬 힘 없으면 복지국가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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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끊임없이 동북공정 주장… 日, 한반도 분쟁시 개입 노골화
美는 日의도 용인하는 움직임
한반도 둘러싼 냉엄한 국제정치, 제국주의 날뛰던 구한말과 비슷
복지논쟁으로 국방예산 줄어 필요한 전투기도 못산대서야…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 진출했을 때 프랑스신문 삽화에 묘사된 베트남을 보면 조선과 유사한 관복을 입은 관리와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총통 같은 공용화기를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강토를 침입하는 외적에게 대포를 쏘며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몇 개쯤 존재했을까? 임진왜란이 있었던 16세기 말에는 몇 나라가 자체 기술로 만든 대포를 보유했을까? 2차방정식 ‘근의 공식’을 알았던 조선의 수학 수준은 세계 몇 위의 실력이었을까? 개성상인이 사용했던 회계장부(송도사개치부법)는 서구의 회계장부(복식부기)와 같은 방식인데 어느 것이 앞선 것이었을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니 형편없는 꼴찌 국가였을까? 한국은 21세기 들어 주요 20개국(G20)이 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시절을 맞이한 것일까?

한 가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16세기 말 조선은 세계 20위 이내에 드는 국가였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보다 큰 나라는 중국 인도 터키와 유럽의 몇 개 국가에 불과했으니 20위 안에 확실히 들었고, 10위권에 근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쟁사학자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 육군이 오랜 내전 경험과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돼 있어 당시 세계 최강이었다고 평가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접전을 벌이던 동양 3국의 무력 수준이 세계 수준이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이끌던 조선해군은 산탄포(조란탄), 로켓화살(신기전) 등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해상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역사 얘기를 하는 이유는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세계 순위로는 결코 우스운 나라가 아니었음에도 식민지가 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강한 주변 국가들이 제국주의를 실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가 중국의 한 지방정권이었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 권력진공 상태가 올 때 군대를 진주시킬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 문자판 표준화를 주도할 뜻을 비친 중국을 곱게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계기로 한반도 분쟁에 적극 개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이 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부담이다. 현재 상황이 구한말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언급이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고 식자(識者)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국방능력 평가는 북한을 상대로 하는 비교평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비교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태평양전쟁의 적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이 이어도를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킨 가운데 한국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 답답해 보인다.

미군의 화력에 국방을 의존하는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부국강병 자주국방을 외친 이유를 오늘에 새겨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자주국방’의 깃발이 왜 사라졌는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먹고살 만하게 되고 G20이니, 세계 7위의 수출대국이니 하니까 무력도 세계 수준인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세계 2위 국가라도 바로 옆에 있는 세계 1위 국가가 제국주의 야욕에 휩싸이면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국내 상황을 보면 걱정이 태산이다. 복지논쟁으로 국방예산의 운신 폭이 좁아져 제대로 된 신형 전투기를 필요한 만큼 사기 어려운 것은 개탄할 일이다. 적이 코앞까지 진격해 와도 잔치는 해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점점 꼬이는 환경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책을 내놓는 일에 모두 나서야 한다.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지만 발등 위의 안보불씨가 연기를 피워내는 형국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부국강병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 세워야 한다. 지난 50년의 경제적 성취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만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번영의 반석’ 위에 오르려면 갈 길이 멀다.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반도 주변을 돌아보고 숨을 고를 때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복지국가’는 의미가 없다. 날지 못하는 때깔 좋은 메추리는 사냥감이 되기 쉽다.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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