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잔 만들어도 철학담는 시대… 산학협력 場에 인문학 초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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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가톨릭대 총장

“모두가 똑같은 것을 잘하려고 경쟁해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대학의 산학협력도 이공계 위주로만 돌아가기보다는 인문학과 결합해 차별화를 해야 합니다.”

개강을 앞두고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 교정에서 만난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사진)은 새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성공리에 수행한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의 1기 사업을 잘 정리하고, 2기 사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가톨릭대의 산학협력 모델은 이공계 위주로 짜인 다른 대학과 달리 인문사회계 위주로 구성돼 주목을 받았다. 산학협력의 차별화를 강조한 박 총장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박 총장은 “대학은 물론이고 정부조차도 산학협력을 이공계 위주로 보지만 과학기술인들만 모여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세상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커피잔 하나를 만들더라도 감성과 스토리, 디자인을 담아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산학협력에 철학을 담고 균형을 유지하려면 인문사회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가톨릭대는 디지털문화콘텐츠 분야와 바이오팜 분야를 산학협력 특성화 모델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두 분야 모두 인문사회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바이오팜의 거점인 BP융합센터에서는 바이오제약 및 의료기기 관련 분야의 융복합 교육과 훈련이 주로 이뤄진다. 그런데 바이오 관련 제품은 일반인들이 어렵게 느껴 잘 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대는 인문계열과 생명공학 전공 학생들이 팀을 꾸려 제품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광고 영상을 만들어 업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디지털문화콘텐츠의 거점인 DC융합센터에서는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와 인문, 사회과학, 공학 계열 학생들이 협력해 융복합 교육을 한다.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황구’도 지난해 여기서 탄생했다. 콘텐츠 기획부터 촬영, 후반작업, 마케팅, 배급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가톨릭대 교수와 학생, 그리고 가족기업이 진행했다.

박 총장은 “산학협력을 지원하는 7개의 센터 내에 교수, 학생, 가족회사가 한데 모여 있고 이들이 협업해 학생을 가르치고 창업도 지원한다”면서 “20년 전 교수들은 연구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학생과 사회가 원하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산학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문사회 모든 전공이 산학협력에 참여하면서 융복합 전공이 활성화되고,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창업이나 특허 취득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가톨릭대는 이런 성과를 다른 대학에 확산시키기 위해 ‘인문사회계 산학협력 지원센터’와 ‘인문사회계 산학협력 포럼’을 만들 계획이다.

산학협력의 새 모델을 발굴한 박 총장은 대학에 대해서도 ‘대학 3.0’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과거에는 잘 가르치는 대학(1.0)이나 학생들이 가려 하는 대학(2.0)이면 충분했으나, 이제는 영혼과 철학을 담아 학생과 사회의 사랑을 받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 총장은 “지금은 인간 존중 사상이 사라지고 매사를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경쟁하는 분위기”라며 “모든 대학이 영혼과 철학을 가르치는 대학으로 변화해가고, 인성을 갖춘 올바른 사회인을 길러낸다면 우리 사회가 치유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톨릭대는 인성, 영성, 지성을 갖춘 윤리적 리더를 키우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윤리적 리더 육성 프로그램(ELP)을 운영해 인성과 문제해결능력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는 ELP가 학생들의 호응을 얻자 ELP(Ethical Leaders Path) 학부대학도 만들었다. 흩어져 있던 교양 교육 담당 기관을 통합해 창의 교육, 인성 교육, 봉사 등을 총괄하고 있다. 박 총장은 “ELP를 이수한 졸업생들이 취직을 하면 회사에서 ‘역시 뭔가 다르다’는 반응이 온다. 가톨릭대 학생들은 성실하고 믿을 수 있다는 평판을 듣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라며 웃었다.

3월이면 교정을 누빌 학생들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하자 박 총장은 ‘줄탁동시((초+ㅐ,줄)啄同時)’라는 말을 꺼냈다.

“알은 밖에서는 어미가, 안에서는 새끼가 서로 쪼아야 생명이 탄생합니다. 줄탁동시야말로 가장 성실한 삶의 자세입니다. 부모와 교수가 학생들에게 사랑을 쏟으면 학생들도 여기 응답해 자신의 생명을 만들기 바랍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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