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내준 주인공 자리…그래도 황연주의 무대는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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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2월 28일 07시 00분


현대건설 황연주(왼쪽)는 한국여자배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다. 예전처럼 주연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베테랑의 경험을 살린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각오다. 스포츠동아DB
현대건설 황연주(왼쪽)는 한국여자배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다. 예전처럼 주연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베테랑의 경험을 살린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각오다. 스포츠동아DB
■ 현대건설 황연주의 선택과 새로운 목표

177cm 아쉬운 키…나이 들자 점프력도 저하
공격 가담 축소·멘탈 흔들·득점 급락 악순환
힘보다 정교함 집중…서브·블로킹 향상 효과
“후회없이 선수생활…후배들에 귀감 됐으면”


현대건설 황연주(28)는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의 기록 그 자체다.

2005년 V리그 출범 때 데뷔해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누적기록에서 대부분 황연주의 이름이 가장 먼저 있다. 득점부문(공격, 백어택, 서브)에서 통산 1위다. 177cm의 신장. 배구선수로는 아쉬운 신체조건이지만 타고난 점프와 스피드로 커버했다. 블로킹과 디그도 통산 6위다. 세터와 수비수의 영역인 세트, 리시브 부문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이름을 올렸다. V리그 10년 올스타는 황연주에게 주는 훈장이었다. 2006년 1월7일 최초로 트리플크라운(후위 공격·블로킹·서브 에이스 각 3개 이상)도 했다. 2010∼2011시즌에는 올스타전,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가져갔다. 그런 황연주가 지난 시즌부터 공격 수치가 떨어지고 있다. 슬럼프라고 했고, 누구는 하향세라고 봤다. 살이 쪘다는 얘기도 들렸고, 탄탄했던 허벅지의 근육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나왔다.

아직은 한창인 나이라고 하지만 배구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 신장의 아쉬움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은 높은 점프로 커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점프능력과 순발력은 어쩔 수 없다. 부상도 잦아졌다. 누구보다 황연주를 잘 알고 오랫동안 지켜본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은 “신장의 단점을 점프로 커버하다보니 다른 선수보다 힘이 들었다. 그래서 부상이 생겼지만 선수라면 누구나 그 정도 부상은 안고 간다”고 말했다.

● 왜 황연주는 부진에 빠졌나

배구는 자신의 최고 타점에서 10cm만 낮아져도 성공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오랜 기간 함께 해온 스승은 제자의 몸 상태를 감안해 새로운 역할을 주려고 했다. 공격 가담비율을 줄여서 팀과 선수에게 모두 도움을 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는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 번 경기에 들어가면 모든 책임을 지던 황연주도 경기 도중 자주 교체되고 어느 세트에는 스타팅에도 나가지 못하면서 흔들렸다. 황 감독의 부진에 대한 진단도 멘탈문제였다. “팀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자주 교체되는 과정에서 리듬을 잃어버렸다.” 김건태 국제심판도 “2012년 런던올림픽 도중 주전에서 밀려나면서부터 황연주가 달라졌다”고 했다.

흔들린 황연주의 마음은 2013∼2014시즌 기록에서 드러났다. 28일 현재 25경기에서 216득점을 했다. 13경기를 치렀던 2005시즌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300득점을 밑돌 가능성이 커졌다. 황연주의 떨어진 득점력은 팀에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5시즌 만에 처음으로 봄 배구에 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팀도 황연주도 이제는 변신을 염두에 둬야 한다.

● 베테랑의 선택과 새로운 목표

황연주는 겸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는 “앞으로는 가늘고 길게 하겠다”고 했다. 남은 배구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지 구상이 드러났다. 비록 예전과 같이 경기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더라도 필요한 때 베테랑의 경험을 살려 모든 것을 쏟아내고 후회 없이 코트에서 나오겠다는 의지다. 가능하다면 선수생활도 오래 해 통산기록도 꾸준히 늘려 자신을 추격하는 후배와 동료들에게 계속 새로운 목표를 제시할 생각이다.

배구는 참으로 묘한 운동이어서 힘이 떨어지자 예측 능력은 좋아졌다. 득점은 2011∼2012시즌을 정점으로 급격히 떨어졌지만 서브와 블로킹 수치는 변화가 없다. 더 좋아졌다. “예전에는 강하게만 서브를 넣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코트 안에 원하는 곳에 넣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상대의 포메이션을 보고 빈 곳을 찾아 송곳처럼 찌르는 서브는 황연주가 자랑하는 공격옵션 가운데 하나다. 최초로 300서브를 돌파했고 400을 향해 달려간다. 상대 공격수의 패턴을 분석하고 움직이는 리딩능력이 중요한 블로킹도 아직은 전성기다. 통산 300블로킹이 눈앞에 있다.

●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다

배구선수를 하면서 돈도 꽤 모았다. “억대 연봉에 오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리 많이는 모으지 못했다”고 했지만 일반인 기준으로 본다면 많은 돈이다. 2010년 FA선수로 이적하면서부터 나눔과 베품에도 뛰어들었다. 그동안 자신을 키워준 중,고교에 기부도 했다. 배구하는 후배들을 위해 몇 년 째 돈을 내놓았다. “그동안 배구로 많은 것을 이뤘으니 이제는 배구를 위해 베풀 때”라는 황 감독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후배들에게는 무엇보다 돈 관리의 중요성을 얘기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관리했지만 지금은 전문가에게 맡겨뒀다. 선수가 나이를 먹을수록 모아둔 돈은 큰 힘이 된다. 그 사실을 알기에 “한 살이라도 젊고 힘이 있을 때 돈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론 아직 어린 선수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황연주 자신도 어릴 때는 귀에 들리지 않던 얘기였다. 황연주는 V리그 후배들에게 롤모델로서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그 끝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을 위해 플레이 하나에 새로운 의미를 두고 감사하며 코트에 들어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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