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나무서 싹 틔우듯… ‘한국의 혼’ 보여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세계면세점서 목조각 작품 판매나서는 무형문화재 박찬수씨

박찬수 목아박물관 관장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목조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 제공
박찬수 목아박물관 관장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목조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 제공
경남 산청의 깡촌에서 태어난 소년은 열두 살 되던 해 서울로 왔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양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을 팔았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미군부대를 돌며 도장을 파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처음 나무를 깎는 법을 배웠다. 소년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깊은 산 속 절간을 돌며 나무 조각을 배웠다. 그러는 사이 청년이 됐다.

1970년대 말 청년은 나무 불상 조각 하나를 손에 들고 단신(單身)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각상을 팔아 청년이 손에 쥔 돈은 1억 원. 1000만 원이면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수 있던 때였다.

1996년 목조각 분야에서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108호)가 된 목아(木芽) 박찬수 목아박물관장의 얘기다. 그의 호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무에서 싹이 트는 순간. 목조각은 분명 운명이었다.

“흙이나 석고에 비해 나무 조각은 훨씬 오래 걸려요. 나이테도 잘 봐야 하고 결도 거스르면 안돼요. 함부로 다뤘다가는 갈라지기 쉽죠. 제대로 된 목조각을 만들려면 나무를 심고 자라는 과정까지 봐야 합니다.”

박 관장은 혼을 쏟았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리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작품 전시를 했다. 찬사가 이어졌다. 그럴수록 내 나라 내 문화에 애정도 커졌다. 1989년 자신이 만든 작품과 수집한 유물을 모아 박물관을 세웠다. 경기 여주시 강천면에 세운 이 박물관의 이름은 호를 따서 ‘목아박물관’으로 지었다.

박 관장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장인(匠人).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작품을 팔 곳이 없었다. 박 관장뿐만 아니라 인간문화재 대부분이 그렇다. 전통 공예품을 상시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내에 마련된 작은 전시장이 전부다. 개인적으로 작품 구매를 의뢰하지 않는 한 거래를 할 여건이 안 되는 것이다.

전통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가수에게 무대도 없이 노래를 부르라는 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인들의 뒤를 이를 후계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장인들이 반길 만한 일이 생겼다. 신세계면세점과 문화재청은 26일 ‘무형문화재 지정 판매’ 협약을 맺었다. 신세계면세점 내에 무형문화재 작품들의 판매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내용이다. 우선 상반기(1∼6월) 내로 부산점에 전용 판매처가 들어선다. 무대가 생긴 셈이다.

인간문화재 장인들은 각오를 다진다. 박 관장은 “사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이 시대에 남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여주=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박찬수#목아박물관장#신세계면세점서#무형문화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