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사라진 텔레마케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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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가뜩이나 영업이 안 돼 울상인 텔레마케터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신용카드 정보유출 사태 이후 좋아진 게 하나 있다. 낮시간에 걸려오는 텔레마케팅 전화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입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시간에 쫓길 때 “좋은 보험상품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라며 걸려오는 전화는 끔찍하다. 상사에게 “잘 좀 하지 그랬냐”는 핀잔을 듣고 있을 때 휴대전화를 받았다가 “축하합니다. 고객님∼”이라며 요란한 팡파르가 울리기도 한다.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스팸 전화’는 금융당국의 텔레마케팅 금지 조치로 크게 줄었다. 해방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텔레마케팅이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도입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88년 미국에 본사를 둔 씨티은행이 ‘선진 영업 기법’으로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최신 정보를 발 빠르게 안방까지 전달해 주는 최첨단 영업수단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대면 접촉 없이 전화만으로 정보를 알리고 상품을 파는 것은 혁신이었다. 업무 특성상 여성에게 유리하고 별다른 기술 없이 일을 할 수 있어 ‘괜찮은 일자리’로도 주목받았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여성단체나 사회복지법인이 텔레마케팅을 여성 직업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각광받던 텔레마케팅은 휴대전화가 확산된 2000년을 전후해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모든 국민이 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영업 대상이 그만큼 늘어났지만 텔레마케팅은 그보다 훨씬 많이 증가해 전화 공해를 호소할 지경이 됐다. 전화를 걸어 할인 혜택을 미끼로 신용카드 번호를 알아낸 뒤 가입비 명목으로 140억 원을 챙긴 일당이 검거된 게 2002년 5월이다. 텔레마케팅 사기의 역사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금융당국의 금지 조치 이후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여러 매체에서 어설픈 조치를 비판하는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당국은 결국 두 손을 들었고 말 많고 탈도 많았던 금융사 텔레마케팅 영업은 재개됐다. 당국이 물러서면서 텔레마케팅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기자는 과연 이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들어줘야 할지를 두고 고민이 컸다. 텔레마케터의 영업권을 보장하는 게 불특정다수의 전화 스트레스를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지 의문이 들어서다. 노골적인 전화사기는 줄었지만 정부(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전화 수신거부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로 텔레마케팅 문제는 심각하다. 올 1월 홈페이지 개설 후 두 달여 만에 ‘수신거부’로 등록된 업체가 4600곳이 넘을 정도다.

이제는 공이 업계로 넘어왔다. ‘묻지 마’식 전화영업이 계속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당국과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금부터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정보 제공이라는 미명 아래 대출, 보험 가입 권유 전화를 받는 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지 소비자 입장에서 따져봐야 한다. 여성, 저학력자 등 취약계층의 생계가 걱정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고용 충격을 흡수할 대안 일자리도 고민해야 한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텔레마케터#신용카드 정보유출#스팸 전화#대안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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