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빨간불 멈춤’ 100%… 봉화군은 78%가 무단횡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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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4>보행자 신호 준수율 살펴보니

지난달 27일 경남 남해군 남해읍 남변리 사거리에서 한 학생이 차가 지나가지 않는데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남해=김성모 기자 mo@donga.com
지난달 27일 경남 남해군 남해읍 남변리 사거리에서 한 학생이 차가 지나가지 않는데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남해=김성모 기자 mo@donga.com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면 횡단보도를 건넌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하면 안 된다.”

보행자 안전의 기본 규칙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 무단횡단 사고(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도로를 건너는 것)로 해마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553명, 2012년 559명, 2013년 519명이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가 나 숨졌다. 2013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5090명인 것을 감안하면 교통사고 사망자 열 명에 한 명은 무단횡단을 하다 숨진 셈이다.

○ ‘무단횡단 0’ vs ‘10명 중 8명 무단횡단’

동아일보가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개발해 발표한 ‘동아교통안전지수’ 가운데 보행자 횡단보도 신호 준수율 전국 평균은 88.47%였다. 10명 중 9명 가까이가 신호를 잘 지키는 셈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편차가 크다. 신호등이 없는 5군데를 뺀 225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전국 최하위에 그친 경북 봉화군의 준수율은 26.67%에 그쳤다. 반면에 경남 남해군, 전남 해남군과 강진군의 준수율은 100%에 달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교통 여건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같은 농어촌 지역이지만 보행자의 교통문화 의식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3일 경북 봉화군 봉화시장 앞 횡단보도.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지만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봉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지난달 23일 경북 봉화군 봉화시장 앞 횡단보도.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지만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봉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지난달 23일 봉화군청 앞 삼거리의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 앞은 인적이 드물었다. 1시간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단 3명이었고, 주행 차량이 뜸한 탓에 이들은 신호가 빨간불일 때 재빨리 길을 건넜다.

더 많은 보행자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봉화시장 앞으로 향했다. 이곳은 봉화농협∼봉화시장∼봉화공용버스터미널 앞으로 이어진 약 800m 거리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2개 설치돼 있었다. 1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이곳에서 보행자의 안전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길을 건넌 138명 가운데 108명(78.26%)이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 도로를 직선이나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건넜다. 왕복 4차로지만 양 길가에 줄지어 불법 주정차한 차량 때문에 사실상 2차로로 좁아져 무단횡단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차된 차량 때문에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가 제한돼 위험해 보였다.

안타까운 상황도 연출됐다. 양손에 짐을 든 할머니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건너려고 했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차량 때문에 한참 동안이나 한두 발을 뗐다가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한 것이다. 결국 할머니는 30여 대의 차량이 지나간 다음에야 조심스레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 신호 준수율 전국 1위의 남해군은 상황이 달랐다. 기자의 현장 점검에서도 무단횡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달 27일 남해읍 남변리 사거리에서 1시간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을 살펴본 결과 횡단보도를 건넌 9명 전부가 신호를 지켰다. 남해병원 앞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1시간 동안 10명이 모두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횡단보도로 건넜다. 준수율 100%였다. 이곳의 횡단보도를 자주 건넌다는 정다연 양(14)은 “신호를 지키는 데 이유가 있나. 조금 늦게 건너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최고다”라며 웃었다.

○ ‘지역민이 교통캠페인 주도’ vs ‘단속 태만’

무단횡단은 엄연한 위법 행위다. 적발되면 육교 아래나 지하도 위 횡단의 경우 3만 원, 그 외 도로에서는 2만 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봉화에서는 아예 단속을 손놓고 있다.

봉화경찰서 관계자는 “무단횡단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 나이 드신 어르신이라서 교통인지 능력이 떨어지는데 단속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살펴본 결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보행자의 통행을 제한하는 불법 주정차에 대해서도 봉화군은 “단속을 하지 않고 계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화군민인 양모 씨(43)는 “읍내에 주차 위반이 많고 보행자들도 무단횡단을 수시로 한다. 경찰이나 군에서는 단속도 안 한다. 의경 한 명만 세워놔도 사고 예방이 될 텐데 그마저 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반면 남해군은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교통문화를 끌어올렸다. 3년 전부터 녹색어머니회가 두 달에 한 번꼴로 경찰이 진행하는 ‘안전띠 매기’ ‘정지선 지키기’ ‘횡단보도 신호 준수’ 등 교통 캠페인에 동참했다. 녹색어머니회는 학부모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캠페인 동참과 함께 교통안전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다른 지역민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모범운전자회, 초등학교 인근 현대자동차 영업사원들도 참여해 초등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살피고 있다.

박은경 경남지부 남해군 녹색어머니회 회장(43)은 “지역민에게 교통안전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캠페인과 홍보가 필요한 것 같다. 점차 지역 교통문화가 좋아지는 것이 반갑고 앞으로 안전한 교통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성교통연구소 장택영 박사는 “지역민들이 캠페인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할수록 교통문화 의식수준이 높아진다”며 “지자체에서도 이에 맞는 교통 인프라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봉화=황인찬 hic@donga.com / 남해=김성모 기자
#봉화군#남해군#반칙운전#보행자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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