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뺏길수 없는… 빼앗고 싶은… 뜨거운 그 바다, 그 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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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와 F-15K 전투기 편대가 동해 상공을 초계비행하면서 찍은 독도. 동도(아래쪽)와 서도 정상에 눈이 쌓여 있는 가운데 그 위로 구름이 지나고 있다. 독도는 우리 민족에게
동방(東方)의 상징이자 소중한 역사의 일부다. 동아일보DB
2012년 12월 27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와 F-15K 전투기 편대가 동해 상공을 초계비행하면서 찍은 독도. 동도(아래쪽)와 서도 정상에 눈이 쌓여 있는 가운데 그 위로 구름이 지나고 있다. 독도는 우리 민족에게 동방(東方)의 상징이자 소중한 역사의 일부다. 동아일보DB
‘2015년 8월 22일 일본은 한반도의 남북 군사대치 상황을 틈타 독도를 무력 점령한다. 한국은 군사대치 상황이 해소되자마자 독도 반환을 요구하지만 일본은 거부한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이후 한일 간에 치열한 법리싸움이 펼쳐진다.’

―강정민의 소설 ‘독도반환 청구소송’

일본은 22일 시마네 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일본 정부의 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 15명, 일반 시민 500여 명이 참석했다. 다케시마는 독도의 일본식 표현이다. 같은 날 한국 서울 도심에서는 다케시마의 날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렸고 한국 정부와 국회는 “일본이 침략주의의 근성을 드러냈다”며 일본을 비판했다.

독도는 다케시마가 아니다. 독도는 독도다. 한국의 동쪽 바다의 이름도 동해(東海)다. 일본해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 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녹록지가 않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지도와 교과서가 늘고 있다. 2007년 미국의 한 출판사는 대한해협을 쓰시마 해협으로 바꿔 표기했다. 호주, 브라질, 일본, 멕시코, 싱가포르, 스페인, 영국이 이 미국 세계사 교과서를 교재로 썼다.

독도가 일본에 점령당한 상황을 가정한 소설처럼 현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독도 영유권을 걸고 싸우게 된다면 한국이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판단이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 15명 중 1명은 일본인 오와다 히사시(小和田항). 한국인 재판관은 없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자주 나오는 주제는 지하자원, 어업권, 경제적 가치, 영해권 등 경제와 국방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에 독도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韓-우산국, 동방(東方)의 끝이자 숨겨진 해상강국

강원 영월군 수주면에서 호야지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양재룡 관장(67)은 독도가 지하자원이나 영해권, 어업자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23일 박물관에서 만난 양 관장은 “독도는 한국에게 동(東)쪽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인류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처음 태어났습니다. 수만 년을 거치며 인류는 제각각 사방으로 이동했어요. 그중 끝없이 동쪽으로 이동한 인류가 한반도에 정착해 지금 한국의 먼 조상이 됐습니다. 이들은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를 건너 계속 동진(東進)했습니다. 울릉도를 발견했고 독도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에게 독도는 동쪽의 끝이란 상징성을 가지고 있죠. 지향점의 가장 끝, 경제적 가치나 자원의 효용성보다 중요한 게 이 점입니다.”

독도가 작은 섬이 아니라 고대 해상왕국의 일부였을 것이라는 학설을 제기한 학자도 있다. 김호동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울릉도와 독도를 묶은 우산국(于山國)이 숨겨진 해상강국이었다는 논문을 2009년 발표했다. 독도의 옛 이름은 우산도(于山島)였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에 남아있는 지석묘, 무문토기 등 고대 유물과 문헌을 토대로 기존에 알려진 ‘돌섬’ 독도와는 다른 모습의 독도를 제시했다.

‘우산국을 다스리던 우해왕은 기운이 장사였다. 우해왕 치세의 우산국은 인근 바다를 주름잡았다. 작은 나라였지만 어느 나라보다 바다에서의 힘은 막강했다. 당시 왜구(지금의 일본)는 대마도를 본거지로 삼아 때때로 우산국에 침범해 노략질을 했다. 화가 난 우해왕은 군사를 이끌고 대마도로 갔다. 우해왕은 대마도 왜구의 수장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기에 질린 왜구 수장은 다시는 우산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며 우해왕에게 항복문서를 바쳤다.’(울릉도의 역사로서 우산국 재조명·김호동·2009년)

○ 日-다케시마, 일본을 구한 ‘신의 바람’이 불다

양재룡 호야지리박물관 관장(왼쪽)이 23일 오후 강원 영월군 호야지리박물관에서 가
족 관람객들에게 19세기 지도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양 관장이 손가락으로 독도와
울릉도를 가리키며 “독도는
단순히 경제적, 국방적 가치를 지닌 섬이 아니라 한국의
혼을 담고 있는 섬”이라고 설명했다. 영월=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양재룡 호야지리박물관 관장(왼쪽)이 23일 오후 강원 영월군 호야지리박물관에서 가 족 관람객들에게 19세기 지도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양 관장이 손가락으로 독도와 울릉도를 가리키며 “독도는 단순히 경제적, 국방적 가치를 지닌 섬이 아니라 한국의 혼을 담고 있는 섬”이라고 설명했다. 영월=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도를 보면 일본의 독도에 대한 욕심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일본 열도 오른쪽에는 태평양이 펼쳐져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동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다. 이 대양(大洋)을 놔두고 왜 동해와 독도에 집착할까.

1274년. 아시아와 유럽까지 정복한 원(元·몽골)제국은 일본 정벌을 결심한다. 원의 칸(왕) 쿠빌라이는 2만5300여 명의 병력과 900척의 전함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군은 계속 패하며 물러난다. 전선(戰線)은 쓰시마와 이키에서 기타큐슈 하카타 만으로, 다시 다자이후 미즈키 일대까지 밀려난다.

일본 열도가 원제국에 점령당하기 직전인 어느 날. 해가 진 밤에 바람이 불었다. 아주 큰 바람. 이튿날 날이 밝자 원의 군사들은 당황했다. 동해 인근 하카타 만에 정박시켰던 원의 군함들이 흔적도 없이 바람에 사라진 것. 밤새 동해에 분 폭풍우는 원의 병력과 군함을 바닷속에 수장했다.

1905년 러일전쟁. 일본은 동해가 일본과 한국 사이로 빠져나가는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와 맞붙었다. 발틱함대에는 38척의 군함이 세계 최고 해양함대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의 군함은 24척이었다. 패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바람이 불었다. 동남풍. 일본 함대에서 발틱함대 방향으로 세차게 동남풍이 불었다. 발틱함대는 전진하지 못했고 일본 함대는 바람을 타고 나아갔다. 바람은 49일간 불었다. 발틱함대 38척 가운데 36척이 침몰했다. 반면에 일본이 잃은 군함은 단 3척이었다.

가미카제(神風·신풍). 신의 바람. 양 관장은 설명 끝에 “일본이 동해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 국가와 붙어 두 번 나라를 구한 바람은 모두 동쪽에서 불어왔다. 동해는 일본인에게 신(神)과 같다. 독도를 얻어야 동해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이토록 끈질기게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게 양 관장의 설명이다.

○ 한국은 독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공주사대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1년 교사생활을 시작한 양 관장은 경기 수원 수성고 등에서 지리를 가르쳤다. 매 학기 마지막 날이면 학생들을 모아놓고 독도 특강을 했다. 그는 2007년 교장에서 퇴임하고 그해 5월 4일 강원 영월에 호야지리박물관을 열었다. 호야는 그의 아호다. 정년퇴임에 임박해 아내가 “그동안 가르쳐온 것이 아까우니 박물관 한번 운영해보는 게 어떠냐”고 던진 한마디가 현실이 된 것. 박물관을 열어 그동안 국내외를 다니며 모은 지도와 문헌 등 수집품들을 일반에 공개했다.

독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9년 독도 특별전을 열었을 때였다. 양 관장은 “특별전 때 독도 지도를 모아놓고 계속 들여다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후부터 틈나는 대로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독도 특강으로 독도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양 관장은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한국과 일본 양국이 독도 영유권을 놓고 공개 토론을 벌이면 한국은 열에 아홉은 진다”고 말했다. 양 관장은 “빼앗으려는 자는 지키려는 자보다 늘 부지런한 법”이라며 “일본에 축적된 자료 분량은 상당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무대응 원칙으로 일관했다. 일본은 반대로 국제사회에 독도 갈등을 퍼뜨리며 다케시마와 일본해 표기를 위한 로비를 끈질기게 해왔다. 양 관장은 “한국의 완패”라며 답답해했다.

한때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했던 영국, 프랑스는 입장을 바꿔 독도를 일본령으로 분류했다. 미국 지명위원회는 1977년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 록(Liancourt Rocks)’으로 바꿨다. 독도에 관해 현재 국내에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는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육학부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왜곡된 논리라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으면 그것을 수용하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독도 연구와 자료 축적을 게을리 한다면 일본의 전략에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위 37도 14분 26.8초. 동경 131도 52분 10.4초. 동도와 서도, 부속 섬을 합친 총 면적 18만7554m²의 독도. 북서쪽으로 87.4km 떨어진 울릉도에서는 1년 중 날씨가 화창한 약 30일간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다. 1451년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 권58 지리지12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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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于山·지금의 독도)과 무릉(武陵·지금의 울릉도)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독도에서 동남쪽으로 157.5km, 일본에서 독도와 가장 가까운 오키 섬에서는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

영월=이은택 nabi@donga.com / 박가영 기자
#독도#호야지리박물관#동도#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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