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日헌병에 항의 돌 던졌다고… 징역 3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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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재판 55건 판결문 보니
유관순 열사보다 열흘 앞서 만세운동… 천안 10대 여학생 3명엔 징역1년

‘시장에 모인 300명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칠 때 일본 헌병의 발포로 한 명이 즉사하자, 피고인 공재익은 헌병에게 사람을 살해하고 그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졌다. 피고인 조기시 최덕용 이금봉은 헌병 주재소로 돌을 던졌다. 이 죄를 물어 각각 징역 2년과 3년에 처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만세 투쟁을 하다 검거된 조선인들에 대한 판결문이다. 당시 일제 조선총독부는 무고한 백성들을 치안방해 세력으로 몰아 처벌했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3·1운동으로 재판을 받은 55건(220명)을 선별해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을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빙이 충분하지 않다’고 스스로 밝히면서도 ‘여러 죄명이 겹쳐 있어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며 징역형을 남발했다.

이번에 공개된 판결문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유관순 열사보다 열흘 먼저 만세운동을 주도한 여학생들도 있었다. 충남 천안 광명학교 여학생 민옥금(당시 17세) 한이순(18) 황금순(18)은 1919년 3월 20일 양대리 시장에서 학생 80명을 인솔해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모두 징역 1년에 처해졌다. 이은선은 그해 3월 24일 인천 계양 장기리 시장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하던 중 체포된 동료를 구하려다 일제 순사의 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3·1운동 참가자들은 16세 학생부터 70세 노인까지 노소 구분 없이 연령이 고루 분포돼 있었고 직업도 다양했다. 교사, 농부, 인력거꾼, 잡화상, 이발사, 승려, 날품팔이, 수공업자, 의사, 시계수리공, 야채행상 등 거의 전 계층으로 3·1운동의 불길이 번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일본헌병#3.1운동#유관순#천안#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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