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40년은 내 뜻대로 살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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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한의사 국가시험 최고령 합격한 정승호씨
수동적인 삶 싫어 ‘만학의 길’ 도전
“나이는 숫자… 기억력 더 좋아져
의료봉사 자격 갖게 돼 뿌듯해요”

“나이 60에 한의사가 됐다”며 쑥스러워하는 정승호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나이 60에 한의사가 됐다”며 쑥스러워하는 정승호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모작으로 인생 역전? 그건 욕심이죠.”

2014년도 한의사 국가시험에 최고령으로 합격한 정승호 씨(60)의 꿈은 소박하다. 도심을 벗어나 한갓진 경기 양평군에 한의원을 차릴 계획이다. 치열한 경쟁 문화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다. 새로 시작한 인생 2막은 자유와 여유로움으로 맞고 싶단다.

“젊은 사람들이야 도심에서 번듯하게 병원 차려 큰돈 벌고 싶겠죠. 한 방에 인생 역전해 보겠다는 야심도 생길 테고요. 하지만 전 아닙니다. 환갑을 앞둔 나이가 지혜를 줬거든요.”

돌아보면 숨 막힐 정도로 빡빡하고 바쁜 나날이었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71학번)를 졸업한 뒤 보험업계에 뛰어들었다. 연구자의 길을 위해 철학과를 택했지만, 집안 형편 탓에 공부를 접고 대기업 손해보험사에 취업했다. 퇴직 후에도 보험판매 대리점을 운영했다. 27년을 보험업계에서 일한 그는 “잠시 직장 생활을 하고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게 이렇게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학구열 때문에 한의학에 도전한 건 아니었다. 그는 점점 남은 인생이 불안했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기대수명을 100세로 보면 아직도 40년이나 남은 셈이었다.

“나이 오십 중반을 넘어 주위를 보니 현직에 있는 친구가 거의 없더라고요. 대부분 등산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렇게 수동적으로 삶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리점을 접었다. 물론 가족은 만류했다. 나이 들어 공부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고, 학교에서 나이 든 사람을 뽑아주겠느냐고 걱정했다. 하지만 정 씨는 자신 있었다. 평소에도 매년 40여 권의 책을 읽는 독서습관이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나이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나이를 핑계 삼는 마음이 문제라고 되뇌었다.

이때가 2008년이었다. 1년간 한의대 편입시험을 준비했다. 대학에서 4명을 뽑았는데 8등에 그쳐 낙방했다. 2009년 경기 양평군 중미산 자락의 고시촌에 들어갔다. 그가 양평군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정 씨는 하루 10시간씩 책과 씨름했다. 시험 과목은 한의학과 한문, 영어였다. 생업을 제쳐둔 만큼 빨리 결실을 봐야 했다. 절박함 덕분이었을까. 그는 2010학년도 세명대 한의대 편입시험에 합격했다.

정 씨는 재학 중에도 체력으로나 성적으로나 20대 동기들에게 밀린 적이 없다고 했다.

“본과 3학년 정도 되면 체력이 떨어져서 다들 보약을 챙겨 먹어요. 그런데 전 밥 세 끼로 충분했어요. 4년을 공부했더니 기억력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요.”

4년을 20대의 열정과 패기로 산 그는 지난달 한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시험과목은 내과, 외과, 신경정신과, 침구학, 본초학 등을 합쳐 총 17과목이었다. 그 많은 과목을 모두 소화했을 뿐 아니라 평균 합격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정 씨는 “앞으로 20년은 한의사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특히 퇴행성 질환에 관심이 많다. 노화로 인해 신체 각 부분에 찾아오는 통증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나면 80세가 된다. 그때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그땐 환자를 찾아 산간마을이며 오지를 다녀야죠. 돈 때문에 한의사를 한 게 아닙니다. 침 한 번 맞으려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산간마을을 찾아다니는 거.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게 자유로운 인생 2막 아닐까요?”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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