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약물 파문’ 크루스, 새 둥지서 명예회복 벼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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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2월 26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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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민 새 동료 넬슨 크루스

지난해 약물복용 발각 50경기 출장정지
원소속팀 텍사스 떠나 볼티모어로 이적
포스트시즌 되면 홈런 펑펑…수비 약점


지난해 1월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발각돼 시즌 도중 50경기 출장정지를 당했던 ‘풍운아’ 넬슨 크루스(34)가 마침내 새 둥지를 찾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1년 800만달러에 계약한 그는 윤석민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원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가 제시한 1410만달러의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하고 프리에이전트(FA)를 선언했지만, 스프링캠프가 시작될 때까지 어느 팀도 찾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차에 오리올스가 손을 내민 것이다. 약물 복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다, 그를 영입한 구단은 FA 보상으로 레인저스에 신인드래프트 지명권까지 내줘야 하기 때문에 계약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자신의 요구조건을 대폭 낮춰 오리올스와 합의한 크루스는 주로 지명타자로 나설 전망이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에 비해 재정이 취약한 오리올스는 파워히터 크루스의 가세로 최고의 화력을 갖추게 됐다. 포스트시즌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발휘해온 크루스는 올 시즌 자신의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려 2015년 다시 FA 시장에 나서기 위해 단단히 명예회복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 대기만성형

1980년 7월 1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난 크루스는 17세 때 뉴욕 메츠와 계약했다. 3년 동안 도미니칸 서머리그에서 활약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됐다. 2001년 루키리그에서 출발했지만 더블A로 승격되지 못한 채 3년 만에 밀워키 브루어스로 다시 둥지를 옮기는 신세가 됐다. 마이너리그에서 2004년 26홈런, 2005년 27홈런을 터뜨리며 장타력을 과시했지만 좀처럼 메이저리그 승격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05시즌 막판 빅리그로 승격돼 8경기에서 5타수 1안타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2006년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 브루어스는 외야수 카를로스 리와 마이너리그 유망주 크루스를 보내는 대신 레인저스로부터 랜스 닉스, 케빈 멘치, 프란시스코 코르데로 등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리가 트레이드의 핵심 선수였지만, 트리플 A에서 22홈런을 날린 크루스의 뛰어난 파워 때문에 성사된 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나 크루스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때는 2009년부터였다. 오랜 설움을 털어내려는 듯 크루스는 33홈런을 터뜨리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상을 당한 토리 헌터 대신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영광을 누렸고, 홈런 더비에서도 프린스 필더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 포스트시즌의 사나이

크루스의 진가는 큰 경기에서 나타났다. 2010년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그는 이안 킨슬러와 함께 홈런을 3방씩 터뜨렸다. 그 해 월드시리즈 5차전에선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팀 린스컴을 상대로 홈런포를 뿜어냈다.

2011년 첫 4경기에서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산뜻한 출발을 보인 크루스는 10월 11일 열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2차전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역대 최초의 포스트시즌 끝내기 만루홈런이었다. 이틀 뒤 4차전에서도 3점홈런을 뽑아 레인저스가 4경기 만에 타이거스를 물리치고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나서는 데 수훈을 세웠다. ALCS에서 포스트시즌 단일 시리즈 최다인 6홈런과 13타점을 올리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기쁨까지 맛봤다.

● 2011년 월드시리즈

내셔널리그 우승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치른 2011년 월드시리즈는 매 경기 명승부가 펼쳐졌다. 3승2패로 앞선 가운데 치른 6차전에서 레인저스는 크루스의 솔로홈런 등을 앞세워 6-4 리드를 잡았다. 이는 크루스의 8번째 홈런으로 배리 본즈와 카를로스 벨트란이 보유하고 있던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9회말 2사 후 마지막 스트라이크 한 개만 더 잡아내면 레인저스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크루스의 결정적 실수가 나왔다. 데이비드 프리즈의 타구가 우익수 쪽으로 높게 떠올랐다. 타구가 예상보다 더 뻗어나가자 화들짝 놀란 크루스가 힘껏 뒤로 물러서며 포구를 시도했지만, 간발의 차로 놓치고 말았다. 앨버트 푸홀스와 랜스 버크먼이 모두 홈을 밟아 순식간에 6-6 동점이 됐다.

레인저스는 연장 10회초 조시 해밀턴의 2점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10회말 반격에서 1점을 만회한 카디널스는 2사 후 버크먼이 2B-2S서 극적인 동점 적시타를 날린 덕에 또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카디널스는 연장 11회말 프리즈의 끝내기홈런으로 짜릿한 대역전극을 완성시켰고, 여세를 몰아 7차전도 6-2로 잡고 4승3패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배리 본즈급의 불방망이를 휘둘렀지만, 6차전의 판단 미스로 인해 크루스는 고개를 떨궈야 했다.

● 약물 파문

2013년은 크루스에게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한 해였다. 1월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뉴스가 전해졌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스타급 선수들의 명단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크루스도 그 명단에 포함돼 레인저스 팬들을 실망시켰다. 결국 8월 6일부터 5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의 결장은 가뜩이나 취약한 레인저스 타선을 더욱 물방망이로 만들었다.

징계 탓에 109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크루스는 무려 27홈런을 터트려 FA 대박의 꿈을 부풀렸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레인저스의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하고 장기계약을 노렸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레인저스는 추신수와 장기계약을 해 크루스와 재계약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추신수 외에도 제이코비 엘스베리, 카를로스 벨트란 등이 FA 대박을 터뜨렸다. 모두 방망이뿐 아니라 빠른 발을 이용한 수비가 일품인 외야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11년 월드시리즈의 악몽으로 파워만 뛰어나고 수비는 형편없는 선수라는 낙인과 약물 파문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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