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기다림에 지쳐 눈물이 마르셨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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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상봉 종료]
4년전보다 ‘담담해진 상봉’

남한의 이영실 씨(88·사진)는 20일 이산가족 상봉행사 만찬에서 그토록 그리워한 딸 동명숙 씨(67)를 바로 앞에 두고도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동 씨가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며 울먹여도 이 씨는 “그래요?”라고 답했다. 이 씨의 눈시울은 분명 붉어져 있었는데 얼굴 표정에는 격한 슬픔이 드러나지 않았다.

4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 예년보다 ‘격렬한 슬픔’이 많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왜 그럴까. 시간이 너무 지나 감정이 메말라서일까. 상봉 장면을 지켜보며 분석한 미술해부학자, 정신의학자 등 전문가들은 24일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얼굴 연구가로 유명한 조용진 미술해부학 박사는 “나이가 너무 들어 굳어버린 표정근육이 내면의 북받치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의 고령화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던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과 반가움의 표정이 많았다고 조 박사는 설명했다. 이런 격렬한 감정은 얼굴 표정근육의 수축과 긴장을 통해 ‘불수의(不隨意)적으로’(자기도 모르게) 표출된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신체와 뇌 활동이 둔화돼 표정근육이 함께 둔화되면서 고통과 슬픈 내면의 감정이 얼굴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 박사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담담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노화와 치매 등으로 심연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조차 얼굴에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종민 인제대 의대 신경정신과학교실 교수는 “64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무 오래 억제돼 지쳐버린 체념의 표정”이라고 정의했다. 분단이라는 ‘타의’ 때문에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너무 오래 억누르고 살아온 나머지 그리움의 감정이 바랬다는 분석이다. 재회한 가족과 새로운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없다는 ‘포기의 심리’도 표정에 나타나는 감정의 강도를 약화시킨다. 김석주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60년 넘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이번에도 만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절망의 교차가 반복되면서 감정이 무뎌진 복합적 내면 심리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이산상봉#북한#상봉행사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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