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등급 매기는 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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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얼마 전 지인 가족을 만났다. 밝고 영특한 그 집 맏이에게 초등학교 입학 축하를 건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첫 학교생활이 어땠냐”고 묻자 아이는 “친구가 많아서 좋았다”고 했다.

아이가 저만치 뛰어가자 아이 엄마가 “부모들이 너무 힘들었어”라고 속삭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태도에 따라 5등급으로 매기고, 종종 학부모 휴대전화로 알려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어느 날 ‘△△이는 4등급입니다. 친구들과 다투고 산만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부모를 상상해보라. 고작 일곱 살짜리 아이를 붙잡고 “도대체 학교에서 처신을 어떻게 하는 거냐?” “누구랑 왜 싸웠는지 당장 말해”라며 경을 칠 확률이 90%다.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벌써부터 4등급짜리냐”며 부부싸움이 발생할 확률도 50%는 될 거다.

요즘 초등학교는 시험 등수도 없애는 마당에, 애들이 한우도 아니고 무슨 등급을 매긴단 말인가. 교사의 역할은 공부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와 질서도 가르치는 것 아닌가. 학부모와 면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등급을 통보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곰곰 생각할수록 비교육적인 처사로 느껴졌다. 그러나 학부모가 담임의 문자 메시지에 “이런 방식은 비교육적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낼 확률은 0%일 거다.

동네 아이 엄마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더 씁쓸한 말을 들었다. 인근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봄방학 이후 담임교사 배정표가 발표되기 전까지 삼삼오오 모여 기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학부모 사이에 기피 대상 교사 족보가 도는데, 행여 자기 아이의 담임이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랬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한 교사는 성적과 경제사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너희 그 따위로 하면 OO네 집처럼 살아야 된다”고 훈계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이런 교사는 극히 드물다. 문제는 극소수의 이런 교사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도 지적하거나 제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마다 교사가 바뀌는 중고교와 달리 교사 한 명이 1년 내내 아이를 전담하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교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교장도, 교감도 들여다볼 수 없다. 부모들은 학기 중에 괜히 나섰다가 자칫 자기 아이가 찍힐까 두려워 어지간하면 입을 닫는다. 1년 내내 속을 끓이다가 학년 말이 돼서야 뒷담화를 퍼뜨리는 게 최대한의 저항이다. 이듬해 이런 담임을 만난 학부모들은 또 묵묵히 1년을 견딘다.

어느 조직에서나 소수의 문제 인물이 전체에 누를 끼친다. 그래서 조직마다 다면평가나 상향평가를 비롯한 각종 평가를 한다. 학교의 문제 인물은 어린아이들에게 누가 된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교원평가가 필요하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원평가를 제대로 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정부는 2010년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전면 개편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3년 치 시행 결과를 들여다보면 허탈하다. 교육당국은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가 ‘미흡’ 판정을 내린 교사에 대해 어떤 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는지 진단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후속 조치가 나올 리 없다.

최근 교육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교원평가 계획도 이렇다 할 비전이 없다. 대다수의 선량한 교사들은 교원평가가 중복돼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고, 학부모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불만이다.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에게 외면받는 평가로는 ‘등급 매기는 교사’를 말릴 길이 없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담임교사#등급#학부모#교원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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