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히말라야 천년공동체에 찾아온 ‘불행의 씨앗’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 말을 100마리 가진 사람도 채찍 하나를 빌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중앙북스·2007년) 》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 잡은 천년 공동체 ‘라다크’에서 16년간 지낸 스웨덴 출신 저자는 라다크 토착문화가 근대화로 인해 점차 변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저자가 1975년 라다크를 처음 찾았을 때 라다크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공존’이었다. 공식화된 법체계는 없었지만 자연스러운 중재로 공동체는 안정적으로 꾸려졌고, 풍족하진 않지만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라다크 사회의 위기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을 때 시작됐다. 라다크의 전통적인 가치는 뒤로 밀려나고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가치가 중심으로 떠올랐다. 얼굴 붉힐 일이 생겨도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라며 서로 양보하던 라다크 주민들은 서구 관광객들로부터 배운 ‘돈’의 생리에 적응하며 자신의 이익에 결사적으로 매몰돼 갔다.

라다크의 모습에 한국 사회가 스쳐 지나간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의 해체를 겪었다. 사회 대립이 끊이지 않고 갈등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의 고도성장을 통해 국민이 부유해졌지만 상대적 빈곤의식은 나날이 높아만 진다.

저자는 책을 통해 행복하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가 큰 기술적 진보, 사회 시스템적 진보를 이뤘을지라도 세계 행복 순위에서 가장 낮은 순위를 도맡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보 대신 퇴보를 거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공존을 추구하던 과거의 가치를 되살려야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 문명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 사회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필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의 관점과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는 일이다. 이쯤에서 우리 선조가 가졌던 공존의 지혜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히말라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