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아이와 함께하는 레고타임은 제게 퍼펙트 월드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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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의 취향, 레고

레고 애호가인 직장인 설우신 씨가 자신의 집에서 6세 아들과 함께 레고를 조립하고 있다. 김선아 포토그래퍼 제공
레고 애호가인 직장인 설우신 씨가 자신의 집에서 6세 아들과 함께 레고를 조립하고 있다. 김선아 포토그래퍼 제공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당시 내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주5일제는 고사하고 일요일마저도 회사에 나가야 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어린이날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직장에 나간 아버지 대신 엄마가 사이다와 빵을 챙겨 우리들을 어린이대공원으로 데려가주셨다. 그렇게 1980년대엔 ‘아빠는 회사, 엄마는 가사(家事)’가 공식이었다. 그때 초등학생이던 내게 큰 즐거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방과 후 빼놓지 않고 봤던 미국 시트콤 ‘아빠는 멋쟁이’(원제: 실버 스푼)였다.

‘아빠는 멋쟁이’는 극중 12세의 리키가 이혼한 백만장자 아빠와 살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리키의 집에는 그 시절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임기가 몇 대씩이나 있고, 정교한 모형 기차도 수많은 장난감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장난감보다 더 부러웠던 것. 바로 리키의 아빠가 항상 아들과 대화하고 놀아주며 부비고 안아주는 모습이었다.

백만장자 아빠랑 살면 나도 저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렇게 속으로 되뇌던 초등학생이 이젠 여섯 살의 아이를 둔 아빠가 되었다. 난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가 그 시절 그토록 원했던 모습대로 난 ‘아빠는 멋쟁이’가 되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레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레고는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를 줄인 말로 ‘잘 논다(play well)’는 뜻이다. 그렇다. 난 여섯 살 난 아들과 잘 놀고 싶어 레고를 선택했다. 잘 논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한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은 여섯 살인 아들이 세 살이었을 때, 나와 함께 시작한 첫 레고는 우주왕복선이었다.

아이가 세 살 정도가 되면 유독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것이 테마를 이룬다. 우리 아이의 테마는 우주였다. 집사람과 나는 모든 것을 우주에 맞췄다. 유튜브 동영상 즐겨찾기는 나로호 발사, 태양계 동영상 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이 방 벽지도 우주선이 가득한 우주공간이 됐다. 우리 아이가 곧 우주 과학자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제대로 된 우주선을 아들에게 보여 주고, 만들어 주고 싶은데 마땅한 모형이 없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다가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면서 발견한 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던 ‘레고 시티 3367 우주왕복선’이다. 빛의 속도로 주문한 제품이 배송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뜯고 가지런히 정리된 블록의 포장 비닐을 뜯으며 시작된 감동은 레고를 조립하는 내내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 느낌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교한 레고 블록이 서로 맞을 때 나는 ‘딸깍’ 소리는 듀폰 라이터 뚜껑이 열릴 때 나는 ‘띵∼’ 소리에 견줄 만하다. 블록의 정교한 맞춤에서 오는 손맛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낚시꾼이 놓친 월척의 손맛 허풍보다 더 허황되게 들릴테지만.

각각의 블록이 맞춰져 모양새를 갖춰갈 때마다 아이의 감탄사가 터진다. 아이의 맑은 눈빛에 투영된 아빠는 이미 아이의 영웅이다. ‘아빠는 멋쟁이’가 된 자부심에 으쓱하다.

블록 수가 많지 않아 만들기 쉬운 레고부터 아이와 함께 했다. 아이와의 모든 대화는 레고로 시작해 레고로 끝난다.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과 역사가 레고 블록의 모든 시리즈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현 시대를 대변하는 레고 시티 시리즈에는 경찰, 소방차, 건설 장비, 비행기 등 어린 남자 아이들이 꼭 한 번은 열광할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이 밖에도 공룡(레고 디노), 판타지(레고 키마), 영웅(레고 히어로), 전투(레고 캐슬) 등 아이들이 환호하는 시리즈들이 무궁하다.

아이와 함께 레고하는 시간은 퍼펙트 월드다. 조악한 설명서에 눈살 찌푸리지 않아도 되고, 블록의 거친 마감에 아이의 손이 다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소중하다.

주변에서 “회사일 하면서 아이와 놀아주느라 고생한다”는 말을 내게 할 때마다 난 속으로 작은 고해성사를 한다. ‘사실 아이가 나와 놀아 주느라 고생인데, 나와 레고로 가장 잘 놀아 줄 수 있는 친구는 우리 아이인데’라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그 행복은 나와 가족이 함께 나누고 느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올해 어린이날 즈음하여 황금연휴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레고가 탄생한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트행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며 레고 성지 순례의 꿈을 꾸어 본다.

글: 레고 애호가 직장인 설우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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