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연기력은 기본… ‘썩은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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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이 만난 성우 소연

서울 석관고 1학년 최민경 양(오른쪽)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 목소리 더빙을 맡은 성우 소연을 최근 만났다. 사진은 소연이 그동안 더빙한 캐릭터를 들고 있는 모습.
서울 석관고 1학년 최민경 양(오른쪽)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 목소리 더빙을 맡은 성우 소연을 최근 만났다. 사진은 소연이 그동안 더빙한 캐릭터를 들고 있는 모습.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연일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누적 관객 900만 명을 돌파한 겨울왕국의 흥행엔 한국어판 더빙을 한 전문 성우들의 실감나는 목소리 연기도 큰 역할을 했다.

서울 석관고 1학년 최민경 양(17)이 ‘신나는 공부’의 도움으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전문 성우 소연(본명 안소연·41)을 최근 만났다. 소연은 겨울왕국에서 얼음여왕 ‘엘사’ 목소리를 맡은 15년 차 베테랑 성우다.

외화 더빙부터 ARS 안내까지


‘겨울왕국’의 엘사, ‘쿵푸팬더’의 타이그라스, ‘원피스’의 니코로빈,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그리고 러시아 장대높이뛰기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나오는 운동화 광고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의 목소리까지.

모두 소연이 연기한 목소리다. 성우의 활동영역은 더빙이나 방송 녹음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응답시스템(ARS) 안내 음성, 영어 교재에 녹음된 한국어 안내, 전국 모의고사 듣기평가, 차량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성우를 하게 된 계기를 최 양이 묻자 소연은 “초등학생 때부터 직접 쓴 시나리오로 친구들 앞에서 연기할 만큼 연기를 좋아했다”며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바꾸며 연기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고 성우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970, 80년대에 인기를 끌던 TV 외화 속 한국어 목소리 더빙도 성우의 꿈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줬다고.

일반적으로 방송사 성우 공채 시험의 경쟁률은 200∼300 대 1. 소연도 시험에서 7번을 떨어지고 도전 3년 만에 1999년 KBS 27기 성우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숱한 낙방에 많이 좌절했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성우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에 유성우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옥상에 올라가 떨어지는 별들을 보면서 성우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빈 적도 있어요. 하하.”(소연)

노래 실력 걱정 마세요


“겨울왕국 더빙 과정이 궁금해요.”(최 양)

담당 성우는 외화작품 수입을 맡은 업체가 진행하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다. 더빙 감독이 역할에 어울리는 성우를 선별한 뒤 개별적으로 오디션을 본다. 성우들이 참여한 오디션용 영상 편집본은 해외 본사에 전달된다. 본사에서 담당 성우를 결정하면 본격적으로 더빙을 시작한다.

“외화 녹음을 할 때는 ‘입길이’를 맞춰야 해요. 예를 들어 ‘렛 잇 고(Let it go)’는 3음절인데 한국말로 녹음할 때 ‘날 그만 내버려둬’라고 하면 ‘입길이가 안 맞는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나라 번역은 ‘다 잊어’로 했지요.”(소연)

소연은 겨울왕국 엘사의 한국말 더빙을 맡았지만 노래는 뮤지컬 배우 박혜나 씨가 불렀다.

“겨울왕국은 연기와 노래 오디션을 따로 봤어요. 더빙 감독님이 저보고 ‘뮤지컬 경험이 있으니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했는데 집에서 연습해보니 음이 안 올라가더라고요. 과감히 노래 오디션을 포기했죠.(웃음)”(소연)

뮤지컬 배우 경험이 있는 소연은 겨울왕국에서 노래는 포기했지만 ‘아이스 에이지4’ 등 몇몇 작품에선 노래 더빙도 같이 했다. 현재 어린이 전문 케이블방송 투니버스의 애니메이션 ‘아이 엠 스타(I am Star)’에서 가수를 지망하는 중학생 ‘보라’역을 맡아 직접 노래를 부른다.

“중학생 목소리처럼 들리게 노래를 불러야 하니 어려워요. 아무래도 목에 힘을 많이 줘야 하죠. 성우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노래 실력이 성우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아니에요. 노래를 부르는 역할에 캐스팅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뿐이죠.”(소연)

연기력은 기본, 상상력도 풍부해야

현재 매년 성우 공채를 하는 지상파 방송사는 KBS뿐이다. 교육방송(EBS), 케이블방송 투니버스, 대원미디어 등도 비정기적으로 성우 공채를 한다. KBS 성우 공채는 나이·학력 제한이 없으며 2번의 실기 평가와 면접을 치른다. 공채에 합격하면 2년 전속계약 기간을 보낸 뒤 대개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성우 중에는 연극영화과 출신이 많다. 소연도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성우도 배우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단련하는 만큼 수준 높은 연기력을 요구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해요. 극에 나오는 거친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우스갯소리로 ‘썩은 목소리’라고 하는 목소리도 필요해요. 예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목소리의 개성을 살리면서 연기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소연)

소연은 성우가 되기 위해 약 6개월 동안 성우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발성·발음·연기 등을 배웠다. 성우 지망생끼리 공부 모임을 만들어 대본 읽기와 다른 성별의 목소리 등을 연습했다.

소연은 “어려운 단어를 읽는 연습을 하다 보면 대본을 보며 더빙할 때도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게 된다”며 “생소한 용어가 많은 신문 기사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상상력이 풍부한가요? 상대 배역을 맡은 성우와 대사를 주고받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만 녹음하는 경우가 많아요. 앞에 있는 마이크가 상대 배역인 것처럼 생각하며 열연해야 하니 상상력이 필요하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만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썼던 경험이 상상력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소연)

글·사진 이승현 기자 hyun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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